■ 일본 기업의 창조 경영
연간 생산대수 1000만대를 넘보고 있는 세계 1위 자동차업체 도요타가 ‘집장사’를 한다.
일본 굴지의 전자업체인 히타치가 자동차정비소를 차린다.
어딘가 상식을 벗어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0년, 20년 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기업의 미래 전략 가운데 하나다.
○로봇에 공들이는 혼다
1946년 창립된 뒤 그 이듬해 자전거용 엔진을 크게 히트시켜 기업으로서 틀을 잡은 혼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 ‘바퀴 달린 제품’을 만드는 데 전념해 왔다.
혼다가 1986년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 한창 상업화를 진행 중인 비즈니스용 제트기만 하더라도 ‘바퀴 달린 교통수단’의 범주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다가 자사의 기술역량을 총동원해 개발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바퀴가 아니라 두 발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혼다는 1986년부터 두 발 보행의 원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뒤 2000년 11월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혼다가 2005년 12월 발표한 신형 아시모는 시속 6km의 속도로 걸을 수도 있고 쟁반 나르기와 안내 등의 기능도 수행한다.
혼다가 아시모 개발에 공을 들이는 목적은 단순한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다. 로봇이야말로 미래에 혼다를 먹여 살릴 주력 상품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혼다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혼다는 지금까지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 2차원 이동수단을 만들어 왔다. 비즈니스 제트기는 3차원 이동사업이다. 그 다음은 4차원 이동수단, 즉 타임머신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안으로 로봇에 착안했다. ‘로봇 분신’을 갖게 된다면 굳이 시공을 초월한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금융왕국 꿈꾸는 소니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과 금융업을 겸업하는 것은 오랜 금기로 여겨져 왔다. 이 불문율을 가장 앞장서서 깨고 있는 곳은 ‘워크맨’으로 세계 전자산업의 역사를 새로 쓴 소니다. 소니는 프루덴셜그룹과 합작으로 설립한 소니프루덴셜생명보험(현 소니생명보험)을 1996년 완전 자회사로 만든데 이어 1998년에는 소니손해보험을 설립했다.
2001년에는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합작으로 인터넷뱅킹 전문 소니은행을 설립해 금융종합회사의 면모를 갖췄다. 2005년 소니 그룹 전체의 경영이 흔들리면서 소니가 금융계열 지주회사인 소니파이낸셜홀딩스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소니 측은 “금융부문이 그룹의 수익에도 공헌하고 있다”며 매각설을 일축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소니은행은 100% 자회사인 소니뱅크증권을 설립해 9월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일대 일사업(一代 一事業)’의 도요타
도요타는 1975년 자동차를 이을 전략품목으로 주택을 선정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금력 기술력 영업력 등 3박자를 갖춘 도요타의 진입에 대해 당시 주택업계는 크게 긴장했지만 결론은 기우(杞憂)였다. 도요타의 주택부문 판매실적은 부진하기 짝이 없었고 수익성 면에서는 ‘만년 적자’였다. 도요타가 연간 기준으로 주택사업에서 첫 흑자를 내는 데는 무려 25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도요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주택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전체 도요타그룹의 경영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주택사업의 실적과 전망에 대한 설명이 빠지지 않는다.
도요타가 미련할 정도로 주택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는 ‘일대 일사업’의 원칙 때문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대 일사업 원칙이란 ‘도요다(豊田) 가문’의 대가 바뀔 때마다 1개의 사업에 진출한다는 원칙. 물론 주택사업이 걸어온 길을 보면 이 같은 도요타의 전략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볼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대 일사업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도요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