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몸의 중심’ 귀 안에 있다

입력 | 2007-09-03 03:01:00


《오모(62) 씨는 잠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사흘 전부터 시작된 어지럼증은 1분 정도 지속되다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곧바로 나아졌다. 혹시 뇌중풍(뇌졸중)인가 싶어 병원 응급실을 찾은 오 씨는 의사에게서 “귀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지럼증은 빈혈이나 뇌중풍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진찰해 보면 귀 안에 있는 전정기관의 문제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전정기관은 몸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곳인데 양쪽 귀에 있는 전정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한쪽으로 쏠리거나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귀의 이상으로 인한 어지럼증은 10명 중 3명이 평생 한 번쯤 겪을 정도로 흔한 병이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가 정한 ‘귀의 날’(9월 9일)을 앞두고 귀 이상으로 인한 어지럼증의 진단과 치료법을 알아봤다.

○ 귀 안의 돌가루가 원인 ‘이석증’

오 씨의 정확한 병명은 ‘양성 발작성 체위성 어지럼증’. 흔히 ‘이석증’으로 불린다. 이석증은 귀의 평형 유지기관 속에 있는 ‘이석’이라는 돌가루가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옆에 붙어 있는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갔을 때 생긴다.

이석은 원래 몸의 기울기를 가늠하는 구실을 하는데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오면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잠자리에서 돌아누울 때, 누웠다 일어날 때, 앉았다가 누울 때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면서 구토가 난다.

이석은 주로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 때 떨어져 나온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잘 걸리며 오랫동안 치과 치료를 받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운전한 후에도 발생한다. 잠잘 때 한쪽으로만 누워 자도 이석증 위험이 있다.

과거에는 이석증을 주로 안정제로 치료했는데 요즘에는 목과 몸통 운동을 이용한 재활치료가 더 활발하다. 동작은 이석이 든 전정기관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고개와 몸통을 움직여 이석을 제 위치로 보내는 ‘반고리관 결석 위치교정술’이 많이 쓰인다. 만약 재활치료도 어려우면 아예 이석을 수술로 빼내야 한다.

이석증은 재발률이 상당히 높다. 이석은 귓속에서 생성됐다 흡수되기를 반복하는데 나이가 들면 제때 흡수되지 않아 밖으로 튀어나오기가 더 쉽다. 치료됐다고 하더라도 40개월 후 두 사람 중 한 명은 다시 이석증에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석증을 완벽히 예방하는 방법은 없지만 전정기관 내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을 때엔 혈류를 개선하는 약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 신경에 염증이 생기는 ‘전정신경염’

전정신경염은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대표적 귀 질환이다. 신체 평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정신경에 염증이 생겨 어지럽고 구토와 식은땀이 나며 몸이 한쪽으로 쓰러지려는 느낌을 받는다. 주로 30, 40대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신경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거나 혈액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온 변화가 심한 계절에 많이 발생한다.

전정신경 염증은 잘 아물기 때문에 환자의 70% 이상은 1주일 안에 증세가 호전된다. 어지러워도 어느 정도 참고 지내면 나아지지만 노인은 구토로 인한 탈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전정신경염은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

○ 귀가 멍멍해지는 ‘메니에르 병’

메니에르 병은 어지럼증과 함께 난청, 이명을 동반하는 귀 질환이다. 전정기관의 림프액 압력이 갑자기 높아질 때 일어난다. 스트레스, 면역 이상, 알레르기, 내이 감염, 귓속 혈관 이상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측된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귀에 물이 차는 것처럼 멍멍해지고 귀에서 윙 소리가 나고 잘 안 들리다가 심하게 어지러워진다”고 말한다.

메니에르 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팽창한 림프액을 빼내기 위해 이뇨제가 든 약물과 귀의 염증을 줄이는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평소 짜게 먹지 말아야 하고 카페인 술 초콜릿 섭취와 담배를 줄이는 등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귀로 인한 어지럼증을 빠르고 간단하게 진단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됐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진동자극을 이용한 진단법이다. 이 방법은 귀 뒤 뼈와 목 근육에 약 5분간 진동 자극을 준 후 눈동자 떨림(안진) 반응을 통해 전정기관 손상 여부를 진단한다.

(도움말=박홍주 건국대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교수, 정종우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