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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구간 4년간 450m공사 “그만둬야 할 판”

입력 | 2007-09-03 03:01:00


SOC사업 “SOS”… 전국 409개 현장 중 194곳 ‘파행’현장 르포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예산 부족으로 지연 또는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국토의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찾은 경북 지역의 한 국도(國道) 공사 현장의 모습은 착공한 지 4년이 지난 현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로 중간의 터널만 뚫렸을 뿐 터널 입구와 출구로 각각 이어지는 도로 공사는 손도 대지 못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전체 공사 기간 5.8km 중 불과 450m 정도만 공사가 진척된 상황이었다. 현장 공사 관계자도 “내년에도 정부에서 공사비가 나오지 않으면 아예 철수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공사를 발주한 정부기관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체 공사비의 25%만 지급해 내년 10월로 예정된 완공 시점을 지키기는 불가능해졌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SOC 예산 축소 △예산 배정 방식의 허점 △선심성 공공 공사 발표 남발 등으로 ‘예고된 재앙’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실물경제 부담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 약화와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 국가경쟁력 가로막는 걸림돌

SOC는 국내외 인적 물적 이동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국가의 핵심 자산이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올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SOC 시설 확보율은 42%로 일본(61%) 미국(73%) 독일(91%) 등에 비해 크게 뒤지는 처지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의 2005년 주요 국가별 교통 인프라 부문의 경쟁력 순위를 보더라도 한국의 교통 인프라는 일본과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경쟁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부산항의 항만 경쟁력도 중국의 부상(浮上)으로 컨테이너 처리 실적에서 밀려 세계 3위에서 지금은 5위로 처진 실정이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 동북아 물류허브 등 인프라가 밑받침 되어야 하는 정책을 펴면서 SOC 분야 예산을 사실상 줄이는 것은 모순”이라며 “특히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SOC의 특성을 감안할 때 최근 흐름은 상당히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 전국 SOC 공사 현장 절반이 마비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전국 409곳의 공공 SOC 공사 현장 가운데 이처럼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공사에 차질을 빚는 현장은 194곳(47.4%)에 이른다.

절반에 가까운 현장이 예산 부족으로 △외상 공사 △현장 인력 축소 △적자 시공 △공사 중단 등 파행 운영되고 있는 셈.

전남 지역의 한 철도 공사 현장은 예산 부족으로 아예 공사를 중단한 사례다. 총사업비가 1300억 원이 넘는 공사지만 올해 배정된 예산은 고작 10억 원에 불과했기 때문. 현장 관리비조차 감당할 수 없어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직원을 모두 철수시켰다.

이곳 현장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확보해 주지 않으면 공사를 재개할 수 없어 지금은 마냥 기다리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미리 예정됐던 공사가 진척이 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공사계약 체결방식인 장기계약 공사 제도 때문. 이는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는 공사에 대해 연도별로 예산을 책정하는 것으로 착공 연도 외에 나머지 기간에는 예산이 깎이기 일쑤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계약 공사 형태로 진행 중인 전국 15개 건설사 40개 현장을 조사한 결과 공사계획서에 따른 예산 규모는 5312억 원이었으나 실제 배정된 금액은 2660억 원으로 절반에 그쳤다.

정부도 장기계약 공사를 전체 사업예산이 보장되는 계속비 공사로 유도할 수 있도록 국가계약법을 개정해 입법예고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전체 공사 발주량을 줄일 가능성이 있어 건설업계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전체 SOC 예산이 늘지 않으면 특정 공사의 완공은 보장할 수 있어도 SOC 확충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 대안으로 나온 민간투자사업에도 허점

SOC 공사가 지연 또는 중단되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SOC 관련 예산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수송·교통·지역개발 관련 예산은 2005년 18조3000억 원에서 올해에는 18조4000억 원으로 1000억 원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부의 중기재정 운용계획에 따라 내년에는 18조2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줄어든다.

전체 예산 중에서 차지하는 SOC 예산의 비중이 점차 축소됨에 따라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민간투자사업이지만 이마저 국가 재정에 주는 부담은 적지 않다. 민간이 제안한 사업에 대해 운영 수입의 일부를 보장해 주는 최소운영보장금 제도 때문.

지난해 이 같은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된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터널도로 등 전국 8개 현장에 국고로 지급된 보장금만 1757억 원에 이른다. 민간사업자가 수익성을 확신할 수 없는데도 수익성이 있는 것처럼 사업을 제안해 정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예산처는 최근 “민간투자사업 도입 초기에 일부 사업에서 운영 수입 보장 등의 문제가 노출되기도 했으나 민간투자사업이 꾸준히 늘어나 부족한 재정을 보완해 SOC 시설의 조기 확충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한건설협회는 최근 정부에 제출한 정책건의서에서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동북아 신흥경제국이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샌드위치 코리아’의 현실 속에서 SOC 투자 축소는 경쟁기반 상실과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부산=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