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집에 못 가는 장병들이 많을 줄로 안다.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도록."
1일과 2일 진해해군교육사령부와 진주공군교육사령부에는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20년 만에 주연 여배우로 스크린에 복귀한 한혜숙(56)이 열연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훈련병들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렸다.
올해 추석 극장가에는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올해 66세인 나문희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서 단독 주연을 맡는 기염을 토했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백윤식, 임하룡, 박준규, '즐거운 인생'의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마이 파더'의 김영철 등 대부분 40~60대 이상의 배우들이 주연이다.
○ 중년 배우들의 활약! 다양해지는 충무로
"왜 한국에는 숀 코네리나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가 없을까? 그러나 알고 보니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안 찾은 것이었다."
한 영화 기획자는 충무로에 중견배우들이 각광받는 현상에 대해 "젊은 꽃미남, 꽃미녀 커플이 등장하는 '데이트 무비'에서 벗어나 소재가 다양화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2005년 김을동, 여운계등 50~60대 여배우 5명이 주연한 영화 '마파도'가 개봉했을 때 극장가는 경악했다. 이번 추석에 TV드라마로 친숙한 60대 여배우 나문희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 원톱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다.
황혜진 목원대 영화영상학부 교수는 "마파도 이후 40~60대가 영화에 코미디 조연급으로 대거 부상하면서 웃고 즐기는 대상으로서 윗세대를 희화화할 수 있 문화가 형성됐다"며 "부모세대는 이제 엄숙과 권위가 아니라 똑같은 인간적인 결함들과 어이없는 실수를 안고 사는 한 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 권순분 여사는 평생 국밥집으로 돈을 번 재벌. 그는 휴대폰으로 길찾기도 할 줄 아는 '최신형' 중년 여성이다. 납치당한 권순분여사는 납치범의 돈 요구에 자식들이 냉담하자 "내가 자식들에게 대신 500억원을 받아주겠다"며 분개한다.
김상진 감독은 "요즘 학원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면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를 아이에게 주는 것 같다"며 "영화를 보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잃어버린 꿈을 찾는 40대
'추석=성룡 영화'이란 말이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추석엔 가족영화가 인기였지만 올해는 유난히 중년남성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 두드러진다.
영화 '즐거운 인생'의 아버지는 실직 후 낮에는 퀵 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아버지는 30년을 근속한 만년 부장이다.
하지만 올 추석 극장가를 휩쓰는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던 예전의 아버지에서 벗어나 꿈을 찾아 현실에서 과감히 일탈한다. '즐거운 인생'에서 "누군 하고 싶은 거 없어서 안하고 사는 줄 알아?"라고 소리치는 아내에게 남편은 간단히 대답한다. "당신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아. 애들이 다야?"
'즐거운 인생'의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이제야 꿈을 알아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두 영화의 아버지들이 '록 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 아버지 세대와 달리 이들은 70~80년대 대학생활에서 때 그룹사운드 등 자신만의 문화를 향유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예전엔 기혼 여성의 외로움과 정체성 찾기가 관심이었다면 요즘엔 남성들의 자아 재발견이 화두"라며 "요즘 중년남성들은 혼자 떠나는 오지 여행,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 등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소비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