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12월 노무현 당선자는 “5년 뒤의 후보가 저와 사진 찍고 싶어 하는 그런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런 장면을 ‘성공한 대통령’의 증거로 설정했던 그다.
지금, 그와 함께 사진 찍어 득 좀 보겠다는 대선 주자는 없는 듯하다. 혹시 남북 정상회담이 호재(好材)로 뜨면 그것에 편승할 생각은 있을지라도, 친노(親盧) 무드로는 승산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처한(자초한) 엄연한 현실이다.
정권 안 빼앗기려고 안간힘 쓰는 여권 사람들은 다수 국민 못지않게 ‘대통령의 깽판’이 지겹다. 특히 친여(親與) 매체들까지 반대하는 취재 봉쇄 조치는 여권의 선거전(戰)을 어렵게 한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5년 전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세운 여권 원로가 최근 대통령에게 이른바 취재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유보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돌아온 반응은 요컨대 ‘대통령 그만두라는 말씀입니까’였다.
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축하 영상 메시지 하나 보내 달라’는 PD연합회 창립 기념식에 반(半)불청객으로 직접 찾아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자리가 없어 왔다”며 예(例)의 장연설(長演說)을 했다. 거기서 그는 “전(全) 언론사가 무슨 성명 내고,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제 임기까지 가는 데 아무 지장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유지 비용 너무 많이 든다
취재 봉쇄를 풀라고 모든 언론이 아무리 들고 일어나도 끄떡 않겠다는 호언이다. 여권 원로는 이 얘기를 듣고 “말릴 수 없는 악동(惡童)이야”라며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많은 국민은 노 대통령이 이제 와서 생각을 바꾸건 말건 별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달래 봐야 소용없고, 다 끝나가지 않느냐는 거다. 문제는 국민이 부담할 ‘악동 대통령’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임기 후까지 이월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에 대한 취재, 공무원에 대한 접근부터 차단하는 조치는 군사정권의 보도지침 강요보다도 질이 나쁜 원천적인 언론 탄압이요, 국민 알 권리 침해이며, 헌법 위반이요, 민주주의 유린이다. 노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뿐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 관련 전문가,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이를 지적한다.
친노TV 출연 등을 통해 정권 편에서 비판 신문을 일방적으로 공격해 온 언론학자조차 이번 취재 통제 방안에 대해 “수십억 원의 혈세만 삼킨 채 6개월용으로 끝날 것”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친노 대선예비후보가 적어도 4명(김두관,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이나 있는 통합신당이 어제도 오충일 당대표의 입을 통해 취재 봉쇄 조치를 비난했다.
이런 절대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내가 무슨 일을 해도) 임기 채우는 데는 지장 없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대의(代議)민주주의 나라에서,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말했고, ‘참여정부’라는 문패를 걸어 놓은 자칭 민주화 세력 대통령이 이러고 있다. 그러면서 “저를 그래도 편들어 주던 소위 진보적 언론이라고 하는 언론도 일색으로 저를 조진다. PD 여러분께 간곡히 제가 희망을 건다. 잘 부탁한다”며 이제는 기자와 PD까지 편 가른다.
국정을 생산적으로 운영해 민생이 풀리도록 이끌고, 사회 각계가 이해(利害) 충돌을 완화하도록 ‘포용의 리더십’을 솔선해서 보여야 할 사람이 대통령이다. 진심으로 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그럴 수 있는 권능(權能)과 영향력이 있다.
‘포스트 노무현’은 달라질까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생산보다는 파괴, 통합보다는 갈등, 관용보다는 저주를 택했고 법질서를 지키기보다는 헌법에 기반을 둔 사회를 해체(解體)하려는 경향마저 보였다. 민주화세력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오히려 민주화 세력을 욕보이는 반(反)언론 정책은 그 일부일 뿐이다.
그가 5년 가까이 해 온, 대통령으로서는 삼갔어야 할 갖가지 역주행(逆走行)은 국민의 삶 속에 숱한 후유증을 남겼다. ‘악동’이라는 여권 원로의 말을 전해들은 한 언론인은 “그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악동’은 오히려 미화(美化)”라고 반응했다.
스스로 내던지지 않는 한, 그는 물론 임기를 채울 수 있다. 그에게 행인지 불행인지, 국민의 시선은 진작 ‘포스트 노무현’에 가 있다. ‘악동 대통령’ 모시고 살기가 여간 힘겹지 않다는 기억과 함께….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