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러더군. 워싱턴에서 진정한 친구는 애완견 밖에 없다고. 맞는 말이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올 5월 텍사스 출신 언론인 겸 작가인 로버트 드레이퍼 씨와의 인터뷰에서 창밖의 애완견 '바니'를 보며 한 말이다.
드레이퍼 씨는 4일 발간할 예정인 '절대적 확신-부시의 대통령직'이란 책에서 외부에 비쳐진 것보다 심하게 대통령과 참모간에, 참모들간의 갈등이 빚어져 온 부시 백악관의 내면을 들쳐냈다.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주지사 시절이었던 1998년 텍사스 지역 잡지사 기자로 그의 대통령 도전 계획에 대한 특집 기사를 쓰며 인연을 맺은 드레이퍼 씨는 지난해말부터 최근까지 부시 대통령과의 6차례 인터뷰, 참모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라크 망명객들의 낙관론에 영향받은 이라크 침공=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수개월전 백악관에서 3명의 이라크 출신 망명정치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라크인들은 미군을 열렬히 환영할 것이며, 종파간, 종교간 갈등은 후세인 정권의 붕괴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작은 노력만으로도 이라크에선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재건 전망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생각은 이날 만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백악관의 고위 참모들은 말했다.
하지만 딕 체니 부통령은 이라크 재건 정책의 실패를 곰곰이 되씹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후세인 정권 붕괴 직후 '연합국임시행정당국(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 대신 곧바로 임시정부를 세웠어야 했으며, 폴 브레머를 초대 이라크 최고행정관에 임명한 것도 실수였다고 후회하고 있다.
▽"럼즈펠드 경질 찬성하는 사람?"=2006년 4월 부시 대통령은 참모 7명과의 사적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할지 여부에 대해 즉석에서 거수 찬반 투표를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조슈아 볼튼 비서실장 등 4명이 경질에 손을 들었다.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칼 로브 정치고문 등 3명은 유임에 손을 들었다. 부시 대통령도 유임에 손을 들어서 결국 4대4가 됐다. 부시 대통령이 럼즈펠드 장관의 해임을 최종 결정한 것은 그후 6개월 가량 지난 11월 9일 중간선거 직전이었다.
▽부시는 자전거 매니어=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닥치기 직전 연방재해관리청 주관으로 대책 브리핑이 열렸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침묵만 지켰다. 크로포드 목장에서 8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난 후여서 기진맥진해 있었던 탓이다.
자전거 타기는 부시 대통령의 열렬한 취미다. 백악관 직원들과 경호원들은 대통령이 즐길만한 자전거 코스를 찾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한다. 대통령 방문지가 결정되면 도착 일정 수일전에 현지에 내려가 대통령이 좋아할만한 도전적인 사이클링 코스를 찾고 근방의 호젓한 숙소를 찾는다.
▽참모들과의, 참모들간의 갈등=지난달 31일자로 백악관을 떠난 칼 로브 정치고문은 부시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동안 로브 고문과 부시 대통령은 수차례 의견 충돌을 빚었다.
2000년 대선 당시 부시 대통령이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딕 체니를 고르자 로브 고문은 "아버지때 사람(체니 부통령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등을 지냈음)을 고르는 것은 안정감을 주긴 보단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이란 인상을 준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체니가 편하다"며 이를 고집했다.
보수파들의 반발을 불러와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긴 해리엇 마이어 대법관 추천때도 로브 고문은 우려를 표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큰 소리를 치며 그를 입 다물게 만들어 버렸다. 로라 부시 여사도 마이어 추천에 적극적이었다.
리크게이트가 터지자 로브 고문은 부시 대통령에게 "나는 발레리 플레임을 전혀 모른다"고 다짐했다. 플레임은 부시 행정부 참모들이 언론에 신분을 누설한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이름이다. 하지만 뒤늦게 로브 고문의 연루사실이 드러나면서 부시 대통령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로브 고문의 존재는 백악관 참모들에겐 위압감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대통령 카운슬러인 댄 바틀렛과 큰 갈등을 빚었다. 2006년 초 부시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백악관의 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며 걱정했다. 대통령 카운슬러인 에드 질레스피는 당시 공화당 인사들에게 "백악관에 있다간 미칠 것 같다. 셔틀외교를 하는 외교관처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왔다갔다 해야해. 서로간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라고 푸념했다.
부시 대통령은 결국 비서실장을 앤드류 카드에서 조슈아 볼튼으로 교체했다. 당시 카드 실장 교체는 백악관의 세대교체를 위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실제론 부시 대통령은 그에게 알리기도 전에 후임자를 먼저 결정한 상태였다. 카드 실장은 볼튼에게 축하인사를 건넸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신속히 후임자를 정한데 대해 조금 놀라고 상처 받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볼튼은 비서실장에 취임한뒤 로브 고문의 역할을 정치와 중간선거 문제에만 관여하도록 조정하고 정책 일반에선 손을 떼도록 했다. 로브 고문은 불쾌해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부시 대통령과 로브 고문이 맺어온 34년간의 신뢰를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브 고문은 2일 보수파 격주간지인 내셔널 리뷰 기고문을 통해 "역사는 부시 대통령을 21세기의 핵심 도전들에 맞서 긴 안목으로 대처하고 미국의 힘을 선(善)을 위해 자비롭게 사용한 지도자로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