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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중년에 빠지다…추석영화가 40~60대가 주연 맡아

입력 | 2007-09-04 03:05:00


올 추석 극장가에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66세 여배우 나문희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서 단독 주연을 맡는 기염을 토했고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는 한혜숙(56)이 20년 만에 스크린 주연으로 복귀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백윤식 임하룡 박준규, ‘즐거운 인생’의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마이 파더’의 김영철 등 대부분 40∼60대의 배우가 주연이다.

○중년 배우들의 활약! 다양해지는 충무로

“왜 한국에는 숀 코너리나 메릴 스트리프 같은 배우가 없을까? 그러나 알고 보니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안 찾은 것이었다.”

한 영화 기획자는 충무로에 중견 배우들이 각광받는 현상에 대해 “젊은 꽃 미남, 꽃 미녀 커플이 등장하는 ‘데이트 무비’에서 벗어나 소재가 다양화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2005년 김을동 여운계 등 50, 60대 5명이 주연한 영화 ‘마파도’가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때 극장가는 경악했다. 이번 추석에 TV 드라마로 친숙한 나문희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에 원톱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건’이다.

‘지구를 지켜라’ ‘타짜’ ‘그때 그 사람들’에 출연했던 백윤식은 한국의 잭 니컬슨으로 불리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고 개그맨 임하룡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영화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CJ엔터테인먼트의 이상무 부장은 “예전엔 주연이 30대 후반만 돼도 ‘연령대 낮춰서 시나리오를 고쳐라’는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든 배우들도 영화를 충분히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황혜진 목원대 영화영상학부 교수는 “마파도 이후 40∼60대가 영화에 코미디 조연급으로 대거 부상하면서 웃고 즐기는 대상으로서 윗세대를 희화화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부모 세대는 이제 엄숙과 권위가 아니라 똑같은 인간적인 결함들과 어이없는 실수를 안고 사는 한 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속 권순분 여사는 평생 국밥집으로 돈을 번 재벌. 그는 휴대전화로 길 찾기도 할 줄 아는 ‘최신형’ 중년 여성이다. 납치당한 권순분 여사는 납치범의 돈 요구에 자식들이 냉담하자 “내가 대신 자식들에게 500억 원을 받아 주겠다”며 분개한다.

김상진 감독은 “요즘 학원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엄마들을 보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먹고 싶은 고기’를 아이에게 주는 것 같다”며 “영화를 보면서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기 안의 꿈을 되찾는 40대

‘추석=성룡 영화’란 말이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추석엔 코믹 액션물 가족영화가 인기였지만 올해는 유난히 중년 남성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 두드러진다.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실직하고 낮에는 퀵서비스,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가장,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아버지는 30년을 근속한 만년 부장 등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던 예전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다. 그 대신 꿈을 찾아 과감히 일탈한다. ‘즐거운 인생’에서 “누군 하고 싶은 거 없어서 안 하고 사는 줄 알아?”라고 소리치는 아내에게 남편은 대답한다. “당신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아. 애들이 다야?”

혹자는 요즘의 40, 50대는 기존의 부모 세대와 다르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들이 ‘록 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1970, 80년대 대학생활에서 그룹사운드나 기타를 배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기 안에 감춰졌던 꿈을 찾아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예전엔 기혼 여성의 외로움과 정체성 찾기가 관심이었다면 요즘엔 남성들의 자아 재발견이 화두”라며 “요즘 중년 남성들은 혼자 떠나는 오지여행,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 등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소비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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