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의 모습은 마치 기적이라도 본 것처럼 관찰자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게 된다. 태양계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일한 행성이, 개기일식의 장관을 만들어 내기에 딱 맞는 크기의 유일한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연의 일일까?’ ―본문 중에서》
어렸을 때 우연히 겪은 경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돼 결국 업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럴 때면 흐뭇한 마음에 절로 빙그레 웃게 된다. 마구잡이로 떠돌던 행성이 안정된 제 궤도를 찾아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기자로 활동했고 뛰어난 대중과학서 작가인 저자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과학전에 내려고 행성 모형을 입체적으로 배열해 모형우주 상자를 만들었던 일이나 빨간 망토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 연극에서 태양 역할을 맡았던 경험, 열 살 때 있었던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사건은 그녀가 왜 그렇게 행성에 집착했고 숭배자가 되었으며 이 책의 저자가 되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자그마한 달이 거대한 태양을 완벽하게 가려 버릴 수 있는 크기와 거리(달의 크기는 태양 지름의 400분의 1이지만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태양까지의 거리보다 400배 더 가깝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이는 태양과 달의 크기는 같다)의 신비. 새벽에 태양이 떠오를 것을 미리 알리거나 땅거미 질 때 태양의 뒤를 쫓아가는 작고 날랜 태양의 메신저 수성.
태양빛을 거의 80%나 반사하는 금성은 얼마나 밝았으면 나폴레옹이 정오 연설을 하다가 금성을 찾아냈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금성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을까. 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B-29 비행대는 금성을 일본기로 오인해 폭격을 가했을까. 천문학이 없으면 지리학도 있을 수 없다. 발자국이 100만 년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고 모든 먼지 입자가 영생을 누리는 건조한 달 표면. 가장 오래된 화성의 운석 ‘앨런힐스 84001’이 말하는 화성. 태양계를 순식간에 두 배로 늘린 천왕성의 발견 이야기 등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태양계 행성의 궤도를 넘나들며 나도 모를 힘에 이끌려 아주 먼 명왕성까지 도달하게 된다. 행성이냐 아니냐의 논란 끝에 결국 태양계 행성에서 완전히 빠져 버렸지만 아직도 정서적으로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태양 지구 달 그리고 8개의 행성이 펼치는 경이로운 역사와 과학과 낭만이 어우러진 ‘행성 이야기’는 단순히 과학 지식만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신화와 여러 가지 에피소드, 고대부터 근세 시인들의 시까지 다양하게 버무려서 글을 풀어놓은 솜씨가 맛깔스럽고 우리의 아홉 행성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따뜻하고 재치 넘친다.
한 가지 정보를 더하자면 구스타브 홀스트의 모음곡 ‘행성’을 들으며 이 책을 읽어 보시라. 제대로 행성 여행에 빠져들 수 있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곡인 ‘수성, 날개 달린 파수꾼’, ‘목성, 기쁨을 가져오는 자’는 몹시 사랑스러운 곡. 천상에 공기를 주면 진정한 진짜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태의경 KBS 아나운서 ‘태의경의 우주콘서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