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해 온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안이 조직을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전문가로 채우고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해 국민연금 운용 전문가들이 정부의 영향력에서 최대한 벗어나 외국의 연기금처럼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본보 5일자 A2면 참조
국민연금 기금운용 민간전문가에 맡겨 》
민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향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국민연금이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와 같은 효율적인 기관투자가가 되려면 운용공사의 운영체계에 대한 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큰 틀은 합의했지만 세부안은 더 논의키로
정부는 5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 윤대희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한 비공개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안을 논의했다.
관계부처 장관들은 국민연금기금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 대표와 가입자 대표 등을 모두 배제하고 민간 전문가로만 구성된 7∼9명의 기금운용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다만 기금운용위나 기금운용공사 운영 등에 대한 세부안에 관해 이견을 보여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기금운용위원장의 임명제청권을 어디에 둘 것인지,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대신 정부는 어떤 식으로 관리감독을 할 것인지 등을 더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전문가들은 정부의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라 국민연금이 좀 더 공격적인 기관투자가로 변신할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푸르덴셜자산운용 오현세 채권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이 수익성과 함께 안정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설 수는 없겠지만 채권, 주식, 해외투자 등 다양한 투자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향대 김용하(금융경영학) 교수는 “앞으로 기금운용공사의 책임경영, 효율적인 운영체계 등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익률과 효율성에서 낙제점 받은 기금운용위
국민연금 기금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운용위원회는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정부 대표, 노사 대표, 가입자 대표 등 21명(위원장 포함)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대체로 경제 전반에 대해서는 높은 지식과 다양한 실물경험을 갖고 있지만 자산운용에 대한 전문성은 높지 않아 200조 원이 넘는 거대한 국민연금 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
게다가 이 위원회는 비상설기구로 운영되고 있어서 1년에 네 차례 회의를 갖는 것이 고작이며 회의 시간도 2시간이 채 안 된다.
정부 당국자는 “기금운용위의 논의 수준이 왜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을 벌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처럼 기금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직되다 보니 운용수익률도 외국의 연기금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은 5.77%에 불과하다. 13명의 민간전문가가 기금운용의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미국 캘퍼스의 지난해 수익률 15.7%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 운용수익률을 1%포인트만 더 올려도 기금 고갈 시한을 2, 3년 늦출 수 있다며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면 개편을 촉구해 왔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