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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찬란한 여름밤 20선]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입력 | 2007-09-06 03:02:00


《중국에 비해 우리의 옛 왕조들은 제각각 천문 관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안정적, 체계적으로 천문 관측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그만큼 신빙성이 높고 정확한 자료를 남길 수 있었다.―본문 중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240여 개, ‘고려사’에 5000여 개,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려 2만 개. 우리 조상이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해 놓은 수치다. 2만 건은 놀라운 수효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늘을 한 번씩 본다면 54년 하고도 10개월 가까이 봐야 2만 번 하늘을 본 것이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기록의 수만이 아니라 질이다. 우리 선조들이 기록한 천문현상은 현대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토한 결과 매우 훌륭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1604년에 터진 초신성에 대한 기록만 해도 그렇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7개월에 걸쳐 130회에 이르는 관측 기록을 남겼는데 초신성의 광도 변화 자료는 케플러가 관측한 기록과 복사한 듯이 들어맞는다. 케플러가 먼저 발견했다고 떠들어댔으니 그것이 케플러 초신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지 어쩌면 조선초신성이 됐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선조 천문학자들은 이 외에도 엄청난 일을 많이 했다. 도대체 어떤 일을 했느냐고? 그렇게 궁금하다면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를 읽으면 된다.

요즘은 잡광(천문학자들은 별빛을 제외한 모든 빛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이 많아 은하수를 보기도 힘들지만 우리 고대 사서에는 무려 700개에 달하는 오로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는 유럽에 남아 있는 기록보다 많고 체계적이어서 이 기록을 모두 도표에 표시하면 1000년간 나타났던 오로라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오로라와 깊은 관계가 있는 태양흑점에 관한 기록도 고려 숙종 10년(1105년) 이후 본격적으로 나온다. 서양인들의 관측 역사가 기껏해야 400년. 태양의 장주기 활동을 알아보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우리 선조들의 1000년 기록이 태양의 장주기 활동을 알아내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문제는 이 자료들을 연구하는 데 전력을 쏟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온 지구인이 서양 과학에 매달리고 그것이 주류라고 여기다 보니 고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천문현상을 연구하는 일에만 매달리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양 과학 이전에는 동양과 이슬람 과학이 있었고 이들은 유유히 흘러가는 과학이라는 큰 강에 떠 있는 각기 다른 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전통 과학이라는 배에서 서양 과학이라는 배로 잠시 옮겨 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 하나는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전통 과학 분야에 헌신하겠다고 나서는 젊고 활기찬 학생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머지않아 우리 유전자에 찍혀 있는 전통 과학이라는 장구한 흐름 위에 우리의 현대 과학을 싣고 유유히 항해하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 모두 그 주인공이 되어 보자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지유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