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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굿은 ‘恨’이 아니라 ‘good’

입력 | 2007-09-06 03:02:00

소리꾼 채수정 씨는 판의 신명을 되살리기 위해 2003년부터 젊은 소리꾼들과 함께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인사동 거리소리판’을 열었다. 그는 ‘굿판’에서도 우리 음악의 원천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굿은 한(恨)이나 슬픔이 아닙니다. 굿은 ‘굿’(good)입니다. 기쁨과 희망을 찾게 하는 우리식 놀이문화입니다.” 판소리 명창 채수정(38) 씨는 화려한 한복을 좋아한다. 그는 “결혼할 때도 쪽 찌고 한복 입는 것이 노래 부르러 무대 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씩 새하얀 소복을 입고 신명 나게 노래를 한다. 바로 ‘굿판’이다.》

채 씨는 국악계에서 남부럽지 않은 재원이다. 명창 박록주-박송희 선생의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로서 2002년 프랑스 리옹에서 ‘흥보가’를 공연하기도 했다. 또한 경희대 국문학 석사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박사과정(판소리)에 있으면서 대학,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강의하는 ‘먹물’깨나 든 명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1996년 굿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대학로 두레극장에서 진도 채정례 당골(무당)의 ‘씻김굿’을 보고 가슴 속 고민이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을 받았던 것.

“판소리의 신명을 어떻게 되살릴까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굿에서 ‘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어요. 굿을 녹음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배워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 촬영 : 전영한 기자

그는 이후 10년 동안 채정례 당골을 따라 진도의 초상집을 돌아다니며 굿판에 섰다. 사람이 죽었을 때 ‘씻김굿’,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제황맞이굿’, 이사갈 때 ‘성주굿’…. 굿에는 우리네 모든 인생살이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소리꾼이 굿판에 서는 것에 대해 국악계 어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어느 날 진도군수가 채 씨를 보고 “따님이 판소리해서 교수 되는 줄 알았더니 당골네 됐습디다”고 말해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채 씨는 “판소리가 예술이면 굿은 어머니 예술”이라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굿은 전통가무악의 ‘자궁’ 같은 존재입니다. 판소리, 산조, 민요 등은 굿판에서 기원한 것이 많아요. 시나위는 굿판의 즉흥반주 음악이고, 민요 ‘창부타령’은 경기 도당굿에서 불린 노래, 살풀이춤은 굿판에서 살을 풀어내는 춤이에요. 판소리, 산조, 살풀이는 위대한 예술로 존중하면서 모태가 된 ‘굿’을 별종으로 보면 안 됩니다.”

채 씨는 신 내림을 받은 ‘강신무’도 아니고, 어머니를 따라 무당이 된 ‘세습무’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학습무’인 셈.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우렁찬 목청과 서글서글한 눈매로 굿판을 휘어잡는다. 처음엔 슬피 울던 사람들도 굿 막판엔 기쁨에 차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는 “굿은 미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정신치료제”라며 “‘세습무’는 자식들에게 예술성을 철저히 전수해 온 프로 예능인 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 씨는 15일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경기 의정부 문화의전당 앞마당에서 열리는 ‘굿 음악제’에 참여한다. 소리꾼 채수정이 중앙무대에서 ‘당골’로서 ‘커밍아웃’하는 순간이다. 굿판에는 강태환(색소폰), 박재천(퍼커션), 미연(피아노), 강은일(해금), 록 밴드 ‘크라잉 넛’ 등도 함께 어우러지며, 김매물 만신이 ‘황해도 굿’을 펼친다. 02-2653-5133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