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협의회가 그제 전국 199개 4년제 대학의 2008학년도 정시모집 요강을 발표한 직후 교육인적자원부가 슬그머니 보도자료를 돌렸다. ‘공교육 정상화’에 적극 동참한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에 대해 행정·재정 지원과 연계해 차별화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내신(학생부) 반영비율을 낮게 책정하거나 등급 간 점수 차를 미미하게 설정한 수도권 주요 사립대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해 제재하겠다는 뜻이다.
▷두 달 전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대입 내신 반영률을 자율에 맡기겠다. 제재 논의는 적절치 않다”고 한 말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교육부는 당시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50%까지 높이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하다가 교수들이 반발하고 여론이 들끓자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30% 수준에서 출발해 3, 4년 내에 단계적으로 목표치에 도달해 달라”고 물러섰다. 이러던 교육부가 다시 돌변한 이유가 궁금하다.
▷교육부가 제재를 하겠다는 내년 2월은 정부가 바뀌는 시기다. 어떤 교육철학을 가진 대통령이 취임할지 모르는 때를 제재 시점으로 잡은 의도가 아리송하다.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엄포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거나,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교육부가 저러는 것 아니냐는 풀이도 있다. 입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학부모와 수험생은 어느 쪽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럽다.
▷대학에 관한 각종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부의 힘은 막강하다. 사이버대학 인허가를 담당했던 교육부 국장급 간부가 대학들로부터 2억2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일 구속된 것도 교육부의 ‘규제 파워’를 보여 준 사례다. 수도권 주요 사립대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목을 매고 있다. 교육부 대학지원국장은 브리핑에서 내신 반영비율을 로스쿨 설립 인가와 연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교육부 규제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한국 대학들이 언제쯤 세계 일류대학에 진입할 수 있을까.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