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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영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실제모델의 특별한 연주

입력 | 2007-09-07 03:01:00


《매달 월급날이면 원천 징수되는 갑종근로소득세.

이 정체 모를 항목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 구자중(41·베이스) 씨가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 나서였다.

빚 독촉처럼 어김없이 날아오는 고지서에, 할부금처럼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게 못마땅해졌다. 더 억울한 건 아무도 납세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원천적’으로 ‘부과’돼야 한다는 당위적인 대답만이 돌아왔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지갑’엔 팍팍한 일상이 채워져 갔다.

‘이건 아닌데….’ 슬슬 회의감이 밀려왔다. 계속 뭉그적거리면 잃고 싶지 않은 게 더 많아질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

잘나가는 광고회사, 5년 만에 단 대리라는 직함을 보기 좋게 걷어찼다.

서른두 살이던 1998년.

외환위기 이듬해였다. 》

○ 직장인 의기투합 ‘갑근세 밴드’ 결성…10년 새 2000명 넘게 거쳐 가

그해 온라인 포토 사업체를 시작한 그는 학창시절 밴드활동을 하던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2명 모두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대리들. 하지만 취업했다는 자부심도 사라지고, 승진을 위해 자신을 버리기 시작한다는 직장 5, 6년차였다. 술잔이 자주 바닥을 드러냈고 한숨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구 씨가 제안을 했다.

“세상 뭐 있냐, 내가 행복해야지. 우리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밴드나 해 볼까?”

다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에서 ‘대리’라고 해서 나까지 대리(代理)인생 살 순 없잖아?”

취중 모의는 갑작스럽게 성사됐다.

“그럼 밴드 이름은?”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익숙한 단어. 매달 직장인의 유리지갑을 털어 간다는 ‘그놈의 갑근세’였다.

1998년 PC통신 ‘유니텔’에 갑근세 밴드 모집 공고가 뜨자 직장인 100여 명이 몰려왔다. 오디션을 볼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밴드를 거쳐 간 직장인만 2000명이 넘는다. 규모가 커지자 밴드 내에서도 특소세 밴드, 부가세 밴드, 교육세 밴드, 인지세 밴드 등이 가지를 쳤다. 원조인 갑근세 밴드를 포함해 인터넷에 등록된 직장인 밴드 카페만 해도 230여 개. 최근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매일 오후 4시)은 아예 매주 토요일 ‘우리는 직장인 밴드다’라는 코너를 마련할 정도다.

인터넷에서 갑근세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갑근세 밴드를 알게 됐다는 임영근(38·드럼) 씨의 가입 동기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맨해튼으로 출장을 갔던 그는 오전 7시쯤 아침을 먹으러 가다가 엄청난 현장을 목격하고 만다. 내로라하는 금융 샐러리맨들이 근무하고 있는 세계무역센터가 장난감처럼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8일 동안 발이 묶여 머물러야 했던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개조한 골방에 틀어박혀 드럼 연주를 하다 중학교 입학식에 못 갔던 일, 대학 시절 강릉의 모 야간업소에서 밴드 아르바이트를 하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공연을 끝낸 뒤 오전 5시 트럭을 얻어 타고 가는데 해가 뜨는 거예요. 라디오에서 영국 가수 로드 스튜어트의 ‘세일링’이 나오고. 16시간 굶은 상태에서 ‘거친 세상을 항해해 나가라’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배는 고파도 행복했는데….” 악몽 같은 현장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건져 올린 그는 귀국 후 갑근세 밴드의 드러머가 된다.

12년차 대기업 과장인 정민(38·보컬) 씨는 회식 때마다 늘 괴로웠다. 노래 좀 한다는 소문이 회사에 퍼지자 술만 취하면 노래방에서 한 곡 뽑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습관처럼 취기로 불러 대는 노래들은 무의미해 보였다. 그에게도 조용필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그처럼 큰 무대에서 한 곡 한 곡을 정성껏 불러 내리라는 생각으로 밴드에 지원했다. 하지만 잦은 야근과 뒤늦게 시작한 학업이 발목을 붙잡았다. 휴일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아내의 바람에 집에서도 짬을 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출퇴근 길 차 안을 연습실 삼기로 했다.

다른 멤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임 씨는 드러머가 된 후 액셀러레이터를 드럼의 발판 삼아 운전하다 보니 차가 퉁퉁거린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색소폰 김형돈(38) 씨는 근무 중에 손가락으로도 모자라 입으로 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 영화 시사회 앞서 관객들과 한목소리로 열창

“하지만 내 사랑아, 하지만 내 꿈들아, 이제 난 눈을 뜨고 내일을 생각해 보네, 이제 난 고개 들고 소리쳐 브라보, 마이 라이프!”(영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주제곡)

4일 오후 7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한 극장. 넥타이 대신 물 빠진 청바지에 스니커즈로 가벼워진 차림의 이들이 무대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불렀다. 바로 영화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인연이 된 공연이었다. 이 영화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즐거운 인생’처럼 중년 직장인들이 밴드로 잃어버린 꿈을 되찾는다는 내용. 이날은 바로 시사회에 앞서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갑근세 밴드’의 특별공연이 있었다. 초대된 관객들도 모두 직장인 밴드였다.

짧았지만 최선을 다했던 공연을 마치고 한두 명씩 숨을 고르며 무대를 내려왔다. 지각도 하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한 멤버들이 서로 신기한 듯 농담을 건넸다.

“야, 너 회사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냐?”(구자중)

“몰라. 그냥 조퇴하고 왔다. 넌?”(원준연·41·베이스)

“오늘은 외조부 한 분 돌아가셨다.(웃음)”(구)

“나 봐라, 가방도 놓고 왔잖아, 그래도 비올까 봐 우산은 챙겨 왔어.”(원)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