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이국적인 음식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단연 이태원이다. 최근 이태원 서쪽 지역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젊은 외국인 강사가 많이 사는 동네에 홍익대 앞에서 살던 한국 젊은이들이 속속 합류하면서다.
동네 주민들의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 때문일까. 해방촌길과 육군중앙경리단 부근에는 지갑이 가벼워도 부담 없이 찾아 즐길 만한 집들이 많다. 이 일대에서 독특한 분위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뒤졌다.
○ 지중해식과 인도식이 한 골목에
찾기는 힘들었지만 전망이 노고를 잊게 해 줬다. 좁은 골목길과 좁은 식당 입구를 거쳐 보이는 것은 녹음과 함께 이태원 사거리의 탁 트인 전망. 이태원에 이런 비경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에이프 위드 파이프(Ape with pipe)’는 골목길에 꼭꼭 숨어서 지중해식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다. 문을 연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데다 주인이 외국인 친구들 위주로 식당을 알리는 바람에 손님 10명 중 7명이 외국인.
지중해와 접한 남유럽 즉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음식을 내놓는다. 토마토소스의 조개요리, 계절 야채를 곁들인 도미요리처럼 해산물 요리가 많다. 요리 가격은 1만∼2만 원대. 서양인들이 식사 때 곁들이는 와인은 3만∼5만 원대.
이곳을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 한 가지. 전망 좋은 테라스에는 테이블이 4, 5개 놓여 있는데 파티를 하겠다고 예약하면 테라스를 독차지할 수 있다. 도시의 소음을 싫어한다면 테라스보다는 주방에 가까운 자리가 낫다.
바로 맞은편에는 소문난 인도 음식점 ‘뉴델리(New Delhi)’가 있다. 소박한 간판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찾아가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식당이다.
크게 야채, 치킨, 양고기, 해산물로 나뉜 메뉴에는 커리가 20종에 달한다. 가격은 8000∼1만2000원. 탄두리 치킨은 1만6000원. 빵과 밥은 2000∼8000원 수준이다. 주인 아민 바트 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는 뷔페의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10가지 커리와 10가지의 샐러드를 1만3000원에 즐길 수 있다.
뉴델리에서 이태원 역 방향 골목길로 조금 내려가면 왼편에 모로코 음식으로 유명한 ‘마라케시 나이트(Marakech Night)’가 있다. 찐 밀에 야채와 고기가 함께 나오는 북아프리카 요리 ‘쿠스쿠스’ 등이 유명하다. 아몬드와 삶은 계란을 다져서 만든 요리 등 이색 메뉴가 많다. 주 요리는 1만2000∼1만7000원. 전채는 5000∼8000원.
테이블이 4, 5개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이다. 한남2동 제일기획 본사 옆에는 ‘마라케시 나이트II’가 있다.
▲ 촬영·편집 : 박영대 기자
○ 중앙경리단 옆 ‘가벼운 집’들
뉴델리에서 육군중앙경리단까지는 걸어서 갈 만한 거리다. 반포대교에서 남산3호 터널로 향하는 큰 길에는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간이식당이 많다.
제법 이름을 얻은 곳은 케밥을 전문으로 하는 ‘이스탄불(Istanbul)’. 2인용 테이블 3, 4개로 작은 규모지만 모던한 실내 장식 덕택에 세련된 분위기가 난다.
대표 메뉴는 ‘케밥’과 ‘피시 앤드 칩스’. 케밥은 고기를 싼 빵의 종류에 따라 ‘토르티야’와 ‘에크멕’으로 나뉜다. 밀전병처럼 얇은 빵에 싼 것이 토르티야고, 제법 두툼한 터키빵에 싼 것이 에크멕. 가격은 3000∼3500원. 짠 맛을 싫어한다면 다른 메뉴를 권한다.
피시 앤드 칩스는 주인 김영수 씨가 호주인 친구의 어머니에게 배워서 메뉴로 내놓는 것이다. 대구살과 감자를 튀긴 것으로 영연방 국가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7000원.
채식주의자를 위해 콩으로 만든 미트볼을 튀겨 빵 속에 넣은 ‘팔라펠’은 3500원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태원의 식당들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 메뉴를 마련해 둔 곳이 많다.
간단한 칵테일도 파는데 토요일 오후 9∼11시는 한 잔 값만 내고 두 잔을 즐길 수 있는 ‘해피 아워’다. 김 씨는 “친구들에게 돈을 다 받을 수가 없어 비공식적으로 시행하던 것을 손님들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탄불에서 20∼30m 떨어진 곳에는 멕시코 음식점으로 유명한 ‘타코(TACO)’가 있다. 가격은 3000∼6000원 수준. 타코(3500원), 화이타(4500원), 케사디야(4000원), 치킨 부리토(5500원), 나초(4500원) 등이다. 맛에 비해 가격이 ‘착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바로 옆에 있는 ‘선더버거(Thunder Burger)’는 수제 햄버거를 파는 집이다. 고기의 굽는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집에서 고기를 사다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것 같이 투박한 맛이 난다. 조미료와 소금에 길들여졌다면 맛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고, 쉬는 날은 없다. 오리지널 햄버거 5000원, 치즈버거 6000원, 더블더블버거 7000원 등이다.
○ 해방촌길에 자리 잡은 ‘이국(異國)’
이스탄불을 등지고 섰을 때 마주보이는 길이 ‘해방촌 길’이라 불리는 곳인데 외국인 영어강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동네다.
해방촌길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고바우슈퍼가 있는 작은 삼거리가 나오고 그곳을 조금만 지나면 왼쪽 편에 ‘뉴필리스(New Phillies)’가 있다. 고향이 그리운 서양인들을 위해 ‘올데이 브렉퍼스트’ 메뉴를 영업시간 내내 파는 집이다.
토스트와 베이컨, 달걀, 소시지, 감자 등이 나오는 서양식 아침식사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아침 백반이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싶듯이 그네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메뉴다. 가격은 6500∼9000원. 주인은 뉴질랜드 사람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부터는 바비큐 메뉴가 추가된다. 직접 구워낸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와 샐러드, 바게트가 한 접시 크게 나간다. 1만2500원. 고기가 떨어지면 끝내는데 통상 오후 8∼9시면 끝난다. 캐나다산 생맥주 ‘엘리켓’ 등 다양한 맥주도 함께 판다. 술을 늦게까지 팔기 때문에 화 수 목요일에는 점심에 문을 열지 않는다. 월요일은 쉰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해비탯(HABITAT)’은 샌드위치와 커피,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카페. 4월 말에 문을 열었다. 클럽하우스 샌드위치는 달걀과 햄, 상추, 토마토 등을 푸짐하게 낸다. 6000원. 커피는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홍익대 앞까지 찾아가서 제대로 구워낸 원두를 사 와 우려낸다. 3500원부터. 최근 들어 해방촌에 외국인 강사뿐 아니라 패션이나 애니메이션,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거주가 늘어나면서 들어선 카페다. 해비탯에서 고바우슈퍼 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퓨전 레스토랑 ‘인디고(Indigo)’가 있다. 오믈렛 5000원, 피시 앤드 칩스 8500원, 라자냐 9000원 등이다. 와인은 2만5000∼5만 원대. 주인 강신우 씨는 외국인들이 인디고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음악공연, 시낭송, 코미디 공연 등의 이벤트를 자주 연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