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3대도요지 전남 강진
서해 주꾸미가 큰일을 냈다. 충남 태안 바다 속 보물선 말이다. 주꾸미 잡이 통발에 얹혀 800년 만에 햇빛을 본 고려청자가 수천 점이나 될 듯하다니 국가적 횡재다.
그런데 태안 주민보다 더 가슴 뛰는 이들이 있다. 전남 강진 사람들이다. 이 청자들이 강진에서 구워 황도, 개경으로 운반하는 도중 가라앉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강진은 전북 부안, 전남 해남과 함께 고려청자 3대 도요지 중 하나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의 80%가 강진산이다.
‘강진과 청자.’ 왜 하필 반도의 남단 강진이 청자골이 됐을까. 청해진(완도)의 장보고가 개발한 중국 해상교역로(청자 기술 도입 용이), 질 좋은 고령토(청자의 재료), 잘 발달한 수로(당시엔 육상 수송이 어려웠음)가 그 해답이다. 1000년 전에는 재료와 기술 못지않게 수송도 중요한 변수였다.
당시 청자 생산국은 세계에서 중국과 고려 두 곳뿐이었다. 원래 중국에서 개발된 기술이 통일신라 후반인 9세기 말 한반도로 전해졌다. 12세기 들어 고려가 상감(파낸 표면에 다른 흙을 넣는 것)과 비색(翡色)이라는 독창적 기술을 개발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4세기까지 강진은 그 영광스러운 역사의 주역이었다.
○ 전국 가마터 중 188기 몰려… 9월 문화제 땐 즉석 경매
청자와 관련된 상식 하나. 고려시대 청자는 지구상에서 첨단 기술이었다. 유럽은 18세기 들어서야 작센왕국(현재 독일연방의 일부) 마이센에서 자기(백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배경도 재미있다. 연금술사 뵈트거는 납으로 금을 만들어내라는 왕명을 받았다. 실패는 곧 죽음. 목숨을 건지려면 뭐라도 해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섭씨 1300도까지 온도를 올리는 자기소성 기술이었다. 세계 최고라는 평을 듣는 독일의 마이센 자기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 이전 유럽은 자기보다 한 수 떨어지는 도기의 시대였다. 중국산 자기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자기 중개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유럽 왕실과 귀족들이 중국 도자기의 주요 수요자였다. 소문자로 시작되는 단어 ‘china’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도자기’라는 보통명사로 나온다. 그 시절의 소산이다. 지난 주말 찾은 강진군 대구면 고려청자박물관의 강진요에서는 불 때기가 한창이었다. 고려의 것을 재현한 화목 가마에서 굽는 이 청자들은 강진청자문화제(9월 8∼16일) 때 꺼내 즉석 경매에 부칠 예정이라고 했다. 강진요는 1년에 여섯 번 장작불을 지피는데 그중 두 번이 축제 때다. 경매 낙찰가는 평소 판매가보다 낮을 때가 많다고 하니 올해는 청자경매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
대구면은 고려청자의 메카다. 전국 400여 기의 고려청자 가마터 가운데 188기가 강진에 있고 그 중에서도 대구면 용운리 사당리 등 9개 마을과 칠량면 삼흥리 등이 핵심지로 알려져 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유산에 올리기 위해 실사도 신청해 놓았다.
고려시대 강진의 지명은 ‘당전’이었다. 그 지명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고지도에도 등장한다. 한반도(고려)에 그 지명을 붙였는데 고려청자 산지임을 나타낸 것이 분명하다. 당대 최고로 이름났던 고려청자의 비법이 전수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청자의 비색이란 것이 내기가 쉽지 않은데 주문에 대지 못할 경우 관아로부터 치도곤 당하는 것은 도공뿐이니 자식에게 그걸 물려주려 했겠느냐고.
○ ‘나만의 청자 만들기’ 박물관 체험도 가능
청자는 조선시대 이후 거의 맥이 끊겼다가 1960년대 시작된 발굴과 재현 노력으로 지금은 그 비색이 많이 재현됐다. 그 과정에는 무형문화재 조기정 이용희 선생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강진 고려청자사업소를 이끌었던 이들은 평생을 고려청자 재현에 바쳐왔다. 강진에서만큼은 고려청자가 따분한 유물이 아니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살아 숨쉬는 문화로 생동한다. 고려청자박물관 청자 빚기 체험장에서 30분∼1시간만 투자하면 평생 간직할 나만의 청자 하나를 만들 수 있다. 축제 때면 가마에 불 때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최첨단 기술과 예술적 감각으로 세계의 식탁을 지배했던 우리 조상들의 저력을 강진에서 느껴보자.
강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강진읍=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국도 2호선∼강진 ▽강진고려청자박물관=국도2호선∼강진 목리나들목∼국도 23호선(마량 방향)∼대구면 ▽다산초당=국도 2호선∼남포 나들목∼다산초당 이정표 ▽월출산 무위사&강진다원=국도2호선∼성전면∼국도 13호선(성전 나주방향)∼월출청소년야영장∼월출산 강진다원∼무위사
◇축제 ▽제12회 강진청자문화제=9월 8∼16일, 고려청자도요지 일대. 6년 연속 국가지정 최우수축제. 물레성형 등 15개 체험프로그램, 다산유물 특별전, 청자 20%세일 등 다양한 행사 마련. 행사일정은 축제홈페이지(www.gangjinfes.or.kr) 참조. 061-430-3190
▽들를 곳 △영랑생가=‘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 일컬을 만큼 우리말 다루는 감각이 뛰어났던 서정시인 김영랑의 생가. 초가집 안채와 사랑채, 정원이 예쁘게 잘 복원돼 있다. △사의제=다산이 유배와 처음 기거했던 동문 밖 주막집이 최근 재현됐다. 기념촬영하기 좋다. △무위사=월출산의 암봉 절경 아래 깃든 천년고찰. 수수한 풍치, 아미타삼존불상과 후불벽화(모두 보물)는 놓치면 후회한다. 가는 길에 강진다원을 지나는데 월출청소년야영장∼무위사 길은 정취 만점의 드라이브 코스.△병영면 한(큰)골목=하멜 일행이 7년간 기거했던 병영성 마을에는 당시 이들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빗살식 담장의 골목이 남아 있다. △백련사=다산초당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만덕산 자락의 경치 좋은 사찰.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진만의 구강포 바다, 절을 둘러싼 거대한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도 좋지만 경내찻집의 솔잎차도 그만이다. △관광문의=강진군청(www.gangjin.go.kr, 061-430-3190) 관광개발팀 061-430-3221
푸짐한 남도한정식… 담백한 멧돼지 삼겹살
‘동(東)순천, 서(西)강진.’ 인심 좋고 살기 편하기로 삼남에서 이 두 곳을 꼽았으니 그 바탕은 당연 산해진미의 풍부한 먹을거리라. 남도 한정식의 본고장, 강진의 맛을 소개한다. 음식 및 맛집 문의는 강진군청 위생담당팀. 061-430-3161
▽한정식 명동식당(강진읍 서성리 11-3·사진)은 강진 토박이가 집안행사를 치를 만큼 믿고 찾는 한정식당. 한 상(4인분)단위로만 내는데 10만 원. 남도한정식 상의 진수가 펼쳐진다. 깔끔한 실내도 내세울 만하다. 공용터미널 앞. 연중무휴. 061-434-2147
▽돼지불고기 백반상 수인관(병영면 남삼인리313-1)은 양념한 돼지불고기와 함께 가득 한상을 차려내는 남도백반 식당. 역시 한 상(4인분)단위로만 내는데 2만 원. 병영 오일시장 안에 있다. 061-432-1027
▽멧돼지 삼겹살 구이 강당가든(성전면 월남리)은 방목장에서 직접 키운 멧돼지를 낸다.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담백한 고기 맛은 13년 사육하며 터득한 육종법의 산물이란다. 증도(전남 신안) 천일염만 쓴다고. 닭뼈 국물에 쑨 메밀 찹쌀 죽을 포함해 200g(1인분) 9000원. 강진다원 아래 월남사지 앞. 족구장 야외 풀에 객실(펜션)도 있다. www.kangdang,co.kr 011-609-1296
▽매생이=깨끗한 남도해안(강진 장흥 완도)에서 한겨울에만 채취되는 녹색해조류. 생굴 넣고 끓인 국은 숙취 해소에 좋다. 삼덕수산개발㈜(www.삼덕수산.com)은 영하 40도로 급속 냉동시켜 저장한 매생이를 택배판매(400g에 5000원) 한다. 공장(대구면 수동리 863-1)에서는 축제 기간에 5가지 해조류(매생이 쇠미역 다시마 고시래기 톳) 세트를 저렴하게 판매한다. 061-433-3746
강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