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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X파일]이렇게 위험한 세균을 배양해 달라고요?

입력 | 2007-09-07 03:01:00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크기의 미세한 소자에서 일어나는 전기 현상을 연구하던 우리 팀은 이 기술을 응용해 수질오염이나 식중독의 원인인 대장균을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노기술(NT)과 생명공학기술(BT)의 ‘융합’ 연구인 셈이다.

대장균 센서가 정확히 작동하는지 평가하려면 다른 세균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다양한 세균을 구해 놓고 열의에 찬 우리 팀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용감한’ 말들을 쏟아 냈다.

“우리 이걸 종류별로 하나씩 먹어서 실험해 볼까?” “누가 대장균을 맡을래?”

대부분이 물리학자나 화학공학자인 우리 팀은 세균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터라 생물학 실험실에 대신 세균을 배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대장균을 제외한 다른 세균의 배양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생물학 실험실의 한 연구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 세균들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아세요? 이걸 기르려면 당장 다른 실험을 모두 중단해야 하니 어렵습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뜨끔했다. 곧바로 우리가 확보한 세균들의 위험도 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리스테리아균은 임신부에게 조산을 유발할 수 있고 자칫 태아에게 감염되면 치사율이 25%가 넘는다는 경고가 있었다. 젊디젊은 우리 연구원들이 별도의 안전장비 없이 이 세균을 배양하려고 했다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감염성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환경 기준을 엄격히 갖춘 실험실(BSL)에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다뤄야 한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뒤부터 세균 관련 실험은 계속 생물학 실험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융합 연구는 과학자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과학은 사용하는 용어나 장비도 다르고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예를 들어 나노 소자를 만드는 환경에서는 유기용매를 많이 쓰기 때문에 세균이 살아남지 못한다. 반대로 세균을 배양하는 환경은 여러 성분이 섞인 먹이를 공급하기 때문에 나노 연구자가 보기엔 불순물이 많다.

나노와 바이오 융합 연구는 나노라는 말처럼 10억 배의 노력을 더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른 분야 간 융합 연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맛봤기에 성공할 때 얻는 기쁨이 더 큰가 보다.

이정오 한국화학연구원 융합바이오기술연구센터 jolee@kric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