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를 무기로 거침없는 외교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다. 그는 “양국은 새로운 외교관계의 장을 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주 목적은 무기 판매였다.
그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8, 9일) 참석차 호주 시드니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킬로급 잠수함 2대 등 10억 달러(약 9390억 원)어치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이 인권 탄압을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무기 거래를 중단한 틈을 타 무기 조달의 대안으로 나선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6일 ‘러시아가 돌아왔다(Russia is back)’라며 러시아가 무기 수출을 지렛대 삼아 아시아에서 잃어버린 패권을 되찾으려는 ‘무기 외교’를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02∼2006년 러시아의 무기 총수출 물량은 세계 전체의 28.9%로 미국(30.2%) 다음이다. 그러나 아시아 시장에선 오히려 미국을 앞지른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1998∼2005년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한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291억 달러(약 27조3309억 원)로 전체 물량의 37%를 차지했다. 미국은 약 25%였다.
러시아 무기 거래의 큰손은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과 인도.
유엔의 재래식무기 수출 목록에 따르면 러시아는 2001년부터 6년간 미사일 2656기를 포함해 전투기 군함 등 모두 2728개의 무기를 중국에 수출했다. 같은 기간 인도에도 미사일 805기 등 974대의 무기를 팔았다. 최근에는 방글라데시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으로 수출 대상을 다변화하고 있다.
호주 커틴공대 알렉세이 무라비예프 박사는 “이는 (옛 소련 붕괴 후 영향력을 잃었던) 러시아가 다시 아태지역에서 입지를 회복하려는 장기 전략의 일부”라고 풀이했다.
무라비예프 박사의 해석은 러시아의 자체 군비 증강 움직임까지 더해져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러시아는 △내년부터 극동지역에 개량형 Su-27 전투기와 미사일을 배치하고 △2010년까지 캄차카 반도의 잠수함 기지를 현대화해 핵추진 잠수함을 배치하며 △항공모함 6척을 만들어 2015년부터 태평양지역 군항을 중심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태지역에서의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는 성급하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 웨슬리언대 피터 러틀랜드 박사는 “숙련된 기술자가 턱없이 부족한 러시아가 예전의 ‘군사대국’ 지위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오히려 아시아지역을 상대로 한 러시아의 ‘에너지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틀랜드 박사는 시베리아와 사할린의 석유 송유관 공사가 마무리되면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석유수출 비중이 현행 3%에서 2020년 30%로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아는 그동안 석유 수입량의 4분의 3을 중동에 의존해 왔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