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있었습니다”대통합민주신당 국민경선위원회의 이인영 의원이 6일 전날의 예비경선에서 4, 5위 순위가 뒤바뀐 데 대해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합민주신당 지도부는 6일 당초 잡힌 일정을 취소한 채 두 차례 긴급 회의를 열고 김덕규 위원장을 비롯한 국민경선위원회(국경위) 집행부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이는 5일 예비경선(컷오프) 때의 순위 번복 등 개표 관리 부실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대선 승리에만 매몰돼 원칙과 상식이 사라진 상태에서 일어난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많다. 실무자 차원의 단순한 실수가 아닌 급조 정당이 안고 있는 태생적 결함이 노출됐다는 것.
○ 원칙도, 준비도 없는 총체적 부실
유령 선거인단 파문, 집계 오류 등은 당이 안고 있는 근본적 결함이 원인이라는 게 대통합민주신당 안팎의 지적이다. 준비가 덜된 가운데 촉박한 일정으로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대형 행사를 치르다 보니 뭐가 터져도 터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창당 전에 만들어진 국민경선추진본부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이후 당내 기구인 국민경선위원회로 전환됐지만 당 지도부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아직 당직자 인선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시민사회세력 출신 인사들을 각종 당직에 골고루 배치하면서 국경위 위원도 늘어나 일처리와 위기관리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후보 캠프들이 선거인단 동원에 열을 올려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유령 선거인단이 발견됐음에도 국경위는 “국민경선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냐”며 예비경선을 강행했다.
선거인단 전수조사 과정에서는 결번이거나 자동전화시스템의 녹음된 메시지를 받고 전화를 끊어 버린 사람들도 선거인단에 포함시키는 꼼수를 부렸다.
5일 예비경선에서는 당초 순위나 득표수를 밝히지 않기로 원칙을 정해 놓고도 일부 후보 캠프가 득표수 공개를 요구하자 결국 굴복했다.
오충일 대표의 정치 경험이 적은 데다 후보가 선출되면 당권이 후보에게 넘어가도록 당헌에 규정돼 있어 지도부가 후보 캠프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경위는 순위 번복 사태를 오 대표에게 제때 보고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7일부터 본경선 후보들의 정책토론회가 시작되지만 아직 본경선 규칙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여론조사 반영 여부 등을 둘러싼 후보 간 의견 차이는 여전히 크다.
○ 순위 번복 전말 및 문제점
대통합민주신당은 5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예비경선탈락자를 발표했다. 합산 과정은 이목희 심재권 국민경선위원회 부위원장이 참관했으며 실무자 1명이 계산을 맡았다.
문제는 이 실무자의 합산 결과를 재차 검증할 사람이나 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 2명의 부위원장은 계산 과정까지 점검하지는 않았다. 실무자의 오류가 발생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국경위는 당초 순위 및 득표 수치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으나 언론사의 공개 요청이 이어지자 원칙을 깨고 당선자 순위만 공개했다. 이후 일부 캠프에서 “득표 수치도 공개해야 오해가 없다”며 수치 공개 압력이 거세졌으며 국경위는 김호일, 김덕규 공동위원장의 동의 아래 득표 상황을 언론에 밝혔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의 득표수를 더한 총계가 당초 선거인단 수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경위는 이날 밤 수차례의 재검토 끝에 일반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인단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하는 과정에서 실무자의 착오로 후보들의 득표가 부풀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 대통합민주신당 표정
이목희 국경위 부위원장은 6일 오전 긴급 소집된 당 지도부 회의에서 “득표율 환산작업에 오류가 있었다. 실무적 착오라 할지라도 이런 사고는 안 되며 당원과 선거인단, 국민 여러분께 충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오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당초 이날 오전 경남 창원시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날림 경선’ 여론이 제기되며 이를 급히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몰두했다.
오 대표가 이날 후임 국경위원장으로 임명한 양길승 최고위원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지냈다. ‘청주 K나이트클럽 향응 파문’으로 물러난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과는 동명이인이다.
국경위는 당헌상 독립기구여서 여태까지는 당 지도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으나 오 대표와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 해 온 양 최고위원이 후임으로 임명됨에 따라 당 지도부 또한 개입의 폭을 넓힐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여진이 쉽게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인사가 중책을 맡게 됨에 따라 가뜩이나 복잡한 구도를 감안할 때 본경선에서는 오히려 더 관리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득표 순위가 5위에서 4위로 바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예비경선을 통과했다는 사실 말고 이 시간까지 당에서 공식적으로 통보 받은 게 없다. 내가 몇 위를 했는지 득표수는 얼마인지도 모른다.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수와 심판 관계인 특정 후보와 국경위가 ‘연계’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여전하다. 한 예비경선 후보 측 관계자는 “득표수 공개는 모 후보 측에서 강력히 요구해 이뤄진 것 아니냐”며 “먼저 여론조사 데이터를 본 실무진 중에서 특정 후보 쪽과 연관이 있는 ‘세작’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경위 소속 이인영 의원은 당초 순위 결과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가 번복한 데 대해 “여러분(기자)이 헌신적으로 취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득표수 발표 과정에서 혼선을 빚은 데 대해 “일부 방송이 잘못 보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기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