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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어 장애인 연기 쉬워졌네…허허”

입력 | 2007-09-07 03:01:00


서울 경기 지역에 전해 오는 ‘재담소리’의 고수 백영춘(62·사진) 씨. 1900년대 초 광무대 극장이나 원각사, 협률사 등의 극장에서 막간극 형식으로 유행했던 ‘재담소리’를 잇는 그의 대표작은 ‘장대장 타령’과 ‘장님 타령’이다.

두 작품은 모두 앞을 못 보는 장님(시각장애인)이 주인공. 지혜가 많은 주인공이 양반을 풍자하는 해학적인 내용이다. 이 때문에 그는 평생 흰 도포 자락에 갓을 쓰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를 해 왔다. 그런데 그의 ‘광대 연기’가 너무나 절절했기 때문일까. 그는 3년 전부터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점차 흐려져 실명을 하고 말았다.

“눈이 안 보여도 평생 해 온 것이니 무대에는 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연기가 더 쉬워졌어요. 그래도 입과 귀가 살아 있어 다행입니다. 소리 하는 게 천직(天職)이었나 봅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공연과 후진 양성으로 바쁜 그는 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2007 서울아리’ 공연에서 막간극으로 ‘재담소리’를 선보인다. 재담소리의 창시자인 박춘재 선생이 광무대 극장에서 하던 형식 그대로다.

경기민요와 잡가, 선타령, 발탈재담 등 서울 경기 지역 소리를 보존해 온 그는 2002년 ‘경서도 창악회’를 설립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아리랑’ ‘도라지’ ‘이별가’ 등 서울 지역의 순수 전래민요와 박범훈, 최정식, 이창배 씨의 창작곡 등 전통과 현대의 ‘서울 아리(민요)’를 한꺼번에 보여 줄 계획이다.

그는 “판소리나 육자배기 등 남도 소리는 슬픔과 한이 담긴 단조 선율이 많은 것과 달리 서울 경기 지역의 민요나 재담은 밝고 쾌활한 장조의 선율이 많다”고 소개했다. 또한 그는 “판소리 ‘심청전’의 심봉사는 애달픈 한의 정서를 갖고 있지만, ‘장대장 타령’ ‘장님 타령’의 재담소리에는 똑똑한 장님이 양반을 풍자하는 해학과 웃음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02-533-683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