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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칼럼]‘다섯 번째’ 대선

입력 | 2007-09-07 19:28:00


12월 19일 대통령선거까지 102일 남았다. 한나라당은 이미 이명박 후보로 확정됐다. 그러나 여권 후보는 아직 불확실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갈팡질팡한 끝에 다섯 명의 예비후보를 추려 냈지만 10월 15일 이들 중 누가 최종후보로 결정되든 끝난 게 아니다. 민주당 후보가 있고 독자(獨自)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문국현 씨도 있다.

대선의 의미 제대로 읽어야

여권 후보 단일화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단일화를 해도 승산(勝算)이 없다는 쪽으로 흐름이 이어지면 단일화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어차피 누가 나가도 안 될 거라면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해 각자 도생(圖生)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럴 개연성은 높지 않다. 단일화하라는 여론의 압력을 무시한다면 그 자체로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이 모든 불확실성의 근원(根源)은 아직도 정당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있다. 대선을 앞두고 급조(急造)되거나 간판을 바꾸는 정당이 출현하는 구태(舊態)가 반복되는 한 정치의 후진성은 면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는 대선의 의미 또한 제대로 읽을 수 없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네 번의 대선이 있었다. 1987년 12월 대선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26년간의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민간 민주정부가 들어설 역사적 계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화 세력의 양대 축이었던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군부 후계자인 노태우의 승리로 돌아갔다.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양김(兩金)이 차례로 집권해 민간 민주정부의 틀을 잡았다. 하지만 제왕적(帝王的) 대통령-가신(家臣) 그룹의 수직적 권력 구조는 ‘끼리끼리 식 부패’를 초래했고 결국 양김은 실패했다. 절차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로는 민주주의의 내용이 채워질 수 없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승리한 것은 ‘비주류-진보 세력’이 권력 주류로 진입했다는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노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 및 통합에 실패하고 경제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진보의 실패’란 대가를 치르게 됐다. 노 대통령은 보수 우파로부터는 ‘좌파(또는 친북좌파)’로 비난받고, 진보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또는 시장만능주의자)’로 공격받음으로써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더구나 이를 조정하기보다는 갈등을 유발(誘發)하는 특유의 어법(語法)으로 리더십의 위기를 심화(深化)시켰다.

청와대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은 그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든 현명치 못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치 영역의 언어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가는 것은 스스로 정치 리더십의 미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행여 그렇게 해서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誤算)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대선 판이 굳어질수록 이 후보는 실(失)보다 득(得)이 클 것이다. 여권에서도 “이명박을 당선시키려 작정했느냐”고 한탄할 지경이니 이래저래 이 후보는 ‘복(福)도 많은 사람’이다.

나의 관심은 이런 ‘정치 셈법’에 있지 않다. 청와대의 고소와 한나라당의 국정조사 요구가 빚어낼 극한적 대립에서 정작 ‘다섯 번째’ 대선의 본질적 의미가 희석될 것을 우려한다.

경제 살리기와 양극화 극복

2007년 대선의 가장 큰 의미는 나라경제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면서도 양극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통령과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데 있다. 성장과 분배의 종합체인 양질(良質)의 일자리를 누가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그럴 수 있는 대통령감과 정치 세력을 고르는 데 있다. 여기에 임기가 끝나가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끼어들어 초점을 흐려서야 되겠는가.

경제 살리기와 양극화 극복이야말로 국민의 요구이자 민주화의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이제 여야 후보 및 주자들은 이 문제를 핵심 의제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국민에게 보여 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전히 ‘한 방’에 미련을 갖거나 당내 헤게모니 다툼에 몰두한다면 결코 국민의 선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102일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