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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國庫에 17조 원이 ‘있는지 비는지’ 모른 정부

입력 | 2007-09-07 22:57:00


보름 전인 지난달 23일 재정경제부는 올해 상반기(1∼6월) 나라 전체의 살림인 통합재정(統合財政)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6조1000억 원 적자라고 발표했다. 그러더니 어제는 “그게 아니고, 11조3000억 원 흑자”라고 고쳐 발표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을 빼고 실질적 살림 상황을 보여 주는 관리대상수지도 올 상반기 중 사상 최대인 22조5000억 원 적자(8월 발표)에서 5조1000억 원 적자(어제 발표)로 수정됐다. 각각 무려 17조4000억 원이나 차가 나는 통계다.

재경부는 올해 도입한 디지털 예산회계 시스템의 일부 항목에서 오류가 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억, 2억 원도 아니고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나라 살림 추이를 헛짚고 있었던 것을 단지 컴퓨터 오류나 연산(演算) 실수로 돌리는 것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달마다 산출되는 재정수지 통계가 현실과 크게 엇나가는데도 실무과장부터 경제부총리까지 다단계에 걸쳐 아무런 의심 없이 결재하고 정책에 활용한 과오(過誤)와 무책임은 어떤 핑계로도 덮을 수 없다.

오차가 가장 컸던 항목은 정부 인건비로, 11조5000억 원이 프로그램에 28조7000억 원으로 입력됐다고 한다. 민간기업이 인건비에 이토록 둔감했다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지난달 발표 때 기자들이 “인건비를 포함한 경상지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나 늘어난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지적했지만 재경부는 “맞는 숫자”라고 우겼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가 보여 온 통계 관리 및 활용상의 잘못은 한둘이 아니었다. ‘상위 1.3%의 부유층이 전국 토지의 65%를 소유하고 있다’는 등 엉터리 통계를 앞세워 무리한 데다 반(反)시장적인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고, 가구분화(家口分化) 추세를 무시하고 주택보급률을 잘못 해석해 현실과 엇나가는 규제를 덧입히기도 했다.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통계를 근거로 정책 효과를 부풀려 발표했다가 들통 나기도 했다.

올해 세금도 예상보다 11조 원이나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국회에서 정해 준 금액보다 7.5%를 더 거둔다는 소리다. 나라 살림에 필요한 만큼 거두면 되는데 정부 추계 잘못으로 국민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살림을 대충대충 하는 정부 때문에 힘겨운 건 국민이다. 현 정부 임기 말에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