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국(미국, 영국, 소련 등)과 동맹국(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전개되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제일 먼저 무너진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승리한 연합군이 1943년 7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상륙한 직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은 실각했다.
국왕 빅토르 엠마누엘 3세의 신임 아래 새 총리가 된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우리는 여전히 독일 편에 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바돌리오 총리는 물밑에서 연합군 측과 휴전 협상을 벌였다.
그해 9월 3일. 바돌리오 총리는 연합군과 휴전 협정에 조인했다. 그리고 닷새 후인 9월 8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은 이탈리아가 항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식 항복 발표 후 이탈리아는 혼란에 빠졌다.
엠마누엘 국왕과 바돌리오 총리는 독일의 보복이 두려워 로마에서 도망쳤다. 이탈리아 군대는 아무런 명령도 받지 못하고 방치됐고, 많은 부대가 스스로 해산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의 배신에 분노했다. 항복 발표와 함께 히틀러는 독일군에 이탈리아로 진군하도록 명령했다.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점령되면 발칸 반도에 머물던 독일의 주력 부대가 연합군의 사정권에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밀듯이 밀고 내려온 독일군은 옛 전우였던 이탈리아군의 무장을 해제했다. 저항한 이탈리아군은 살해됐다.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이 함께 주둔해 있던 그리스의 케팔리니아 섬에서는 대학살이 벌어졌다. 독일군은 이탈리아군이 보유한 군수품이 연합군에 넘어가면 장차 자신들을 겨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장 해제를 두고 갈등을 빚던 양측은 교전에 돌입했다.
전투 중 1600여 명의 이탈리아군이 숨졌다. 전투에서 승리한 독일군은 막바지에 항복한 5000여 명의 이탈리아군을 총살했다. 체포 감금돼 있던 무솔리니는 독일군에 구출돼 북부 이탈리아에 나치스 괴뢰정권을 세웠다. 그로부터 2년도 되지 않은 1945년 4월 25일 무솔리니는 반(反)파쇼 의용군에 붙잡혀 그달 28일 총살당했다. 히틀러는 바로 다음 날인 29일 자살했다.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두 독재자는 비슷한 날짜에 비슷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그들의 군대는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