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오염물질 잡는 포스코 환경센터
《분명 흩어지고 있었지만 보이지는 않았다. 흔적은 지상 76m 높이에 있는 컴퓨터 화면에 남았다.
‘발전소 10번 굴뚝: 질소산화물 37ppm, 산소 2.5ppm, 유량 65만7564m³/분.’
용광로에서 분출된 가스는 제철소 내 발전소로 옮겨져 터빈을 돌린 뒤 굴뚝을 통해 그렇게 대기 중으로 사라졌다.
3일 정오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1번지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철 과정에 나오는 가스가 이동하는 노란색 관과 공정 중에 필요한 물이 지나다니는
파란색 관이 고로(高爐)와 주변 설비를 얼기설기 엮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지만 지름 1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노란색 관 속으로
그런 가스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4개의 고로와 2개의 파이넥스 공정을 갖고 있는 포항제철소의 서쪽 끝에는 104m 높이의 거대한 탑이 있다. 이 탑의 지상 76m 지점에 제철소의 모든 대기오염을 감시하는 환경센터가 있다.
환경센터 내 모니터 2대는 67개 굴뚝의 자동측정기에서 보내오는 측정값을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등 오염물질의 농도는 법정 기준치의 80% 수준인 포스코 자체 기준으로 관리한다. 자체 기준에 가까워지면 모니터에는 경고창이 뜨고, 농도를 표시하는 숫자는 분홍색이나 붉은색으로 바뀐다. 제철소 내 해당 공정에는 자동으로 경고음이 울린다.
측정값은 가깝게는 환경센터 입구 전광판에, 조금 멀게는 포항시내 대잠사거리 등 주요 도로의 전광판에 동시에 표시된다. 포항시청과 환경부 산하 환경관리공단으로도 실시간으로 보내져 2중 3중의 감시를 받는다.
엄격한 감시 체계 속에서 환경센터 모니터가 붉은색으로 바뀌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환경에너지실 환경기획팀 박재범 과장은 “제철소 내 94%의 시설에서 방출하는 오염물질의 농도는 법정 기준치의 30% 수준이고, 나머지 6%의 시설은 기준치의 30∼50% 수준을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석탄과 철광석을 쌓아두는 야적장에서 날리는 미세먼지 양을 감시하는 곳도 이곳이다. 미세먼지 측정을 위해 제철소 경계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환경센터 직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는 시내 방향으로 먼지가 날아갈 수 있는 남동풍이 불 때다. 초속 8m 이상의 바람이 불 때는 원료 야적장에 하루 6회의 정기적인 살수(撒水)외에 추가적인 조치를 한다.
○ 환경 경영의 절정 ‘파이넥스’
“작은 석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가지고 나갈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습니다. 모양과 무게까지 대외비입니다.”
파이넥스 공정 운영실 한쪽 구석에 있던 석탄에 손을 대자, 공정을 설명하던 파이넥스연구개발추진반의 이창형 씨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계 제철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 경영의 결정체다. 석탄과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어 제대로 녹이려면 모두 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공정에서는 별도의 코크스 공장과 소결 공장을 두고 덩어리를 만들어 왔다. 파이넥스 공정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용융로 속에서도 석탄의 모양을 유지할 만큼 단단하게 뭉치는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 기술이 운영실 한 구석에 있는 석탄덩이에 녹아 있는 것이었다.
예비처리 단계를 생략해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발생량은 기존 공정의 3%와 1%로 줄었다. 미세먼지 발생량도 기존과 비교하면 28% 수준으로 낮아졌다.
공정 단축에 따른 에너지 사용 효율화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도 줄일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기존 방식에 비해 9% 가량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처럼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 자체를 줄이는 ‘사전 예방’ 방식을 선호한다. 에너지와 원가절감, 오염물질 배출 축소 등 여러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부터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에 눈독을 들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 경영과 제품 및 서비스의 경쟁력은 결코 다른 몸이 아니다.
○ CEO의 ‘환경 경영’ 의지
환경 경영에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제대로 실천하려면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은 환경 경영에 대해 어떤 마인드를 가졌을까. 2006년 9월 지구 온난화 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영화 ‘불편한 진실’이 국내에 개봉될 즈음 이 회장은 해외 출장길 기내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귀국 즉시 이 회장은 모든 임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라고 지시했다. 환경에너지실은 국내에 없는 DVD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제철 산업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어서 기후변화협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06년 포스코의 환경 관련 신규 투자비는 1940억 원으로 전체 투자비의 3%였다. 창사 이후 누적 투자비는 2조9000억 원으로 전체 투자비의 8.6%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2006년 한 해에만 환경 관련 연구개발비로 142억 원, 운영비로 6300억 원을 지출했다.
환경 관련 투자비와 운영비는 재무파트에서도 예산을 삭감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환경에너지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포스코는 이런 사내 분위기를 바탕으로 에너지효율 향상, 혁신기술 개발, 신재생 에너지와 청정개발체제(CDM), 사회적 온실가스 저감 등으로 나눠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이날 취재를 마칠 즈음인 오후 3시, 증권거래소에서는 포스코의 종가가 8년여 만에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포항=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