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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다신 못할 만큼 공들여 리메이크했네요

입력 | 2007-09-13 03:02:00

리메이크 앨범 ‘리와인드’로 돌아온 체리필터. 왼쪽부터 연윤근(베이스), 정우진(기타), 조유진(보컬), 손상혁(드럼).


“우리 노래를 만들 땐 차 없는 새벽을 마음껏 질주하는 기분이었다면 이번 리와인드(rewind) 앨범은 누군가가 닦아 놓은 초행길을 내비게이션 없이 찾아가는 기분이랄까요.”(정우진·기타)

‘리메이크’가 아닌 리와인드 앨범이다. 10일 만난 ‘낭만고양이’ ‘오리 날다’ ‘내게로 와’의 4인조 밴드 ‘체리필터’는 “다른 말이 있으면 그걸 사용하고 싶을 정도로 리메이크라는 표현을 쓰기 싫었다”고 했다.

예전 히트곡의 명성에 편승해 보컬만 새로 입혀 찍어 내는 CD는 차라리 나았다. 한 곡짜리 디지털 음원으로 떠도는 국적 불명의 리메이크 곡들이란…. 변질될 대로 변질된 리메이크 관행을 이대로 놔두기에는 10년차 중견 밴드의 어깨가 무거웠다.

“그게 리바이벌이지 무슨 리메이크인가요. 우리는 다시 예전 그 노래들을 천천히 되감아 듣고 또 들으며 우리만의 밴드사운드로 재창조하고 싶었어요.”(손상혁·드럼)

우선 노래 제목만으론 리메이크 앨범이란 단서를 찾기 힘들다. 패닉의 ‘왼손잡이’와 엄정화의 ‘눈동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명곡’으로 채웠다고 이들은 자부한다.

타이틀곡인 ‘느껴봐’는 몇 년 전 모 음료 광고음악으로 보컬 조유진이 불렀던 곡. 30초짜리 짧은 광고음악은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이 외에도 삐삐밴드의 ‘수퍼마켓’, 조하문의 ‘해야’ 등은 과도하다고 느껴질 만큼 체리필터의 색깔을 덧칠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곡을 원작자인 작사, 작곡가의 동의를 직접 받았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리메이크는 원작자가 아닌 저작권협회의 동의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집했다. 가장 해 보고 싶었던 곡을 녹음까지 마쳤지만 작사가를 만나지 못해 그냥 버린 적도 있었다. 특히 일본 가수 하지메 지토세의 ‘여신의 나무’는 원작자와 100여 통의 e메일까지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여신이 나무가 되어 오키나와 사람들을 지켜 준다는 민요를 차용한 대중가요예요. 이 곡을 다시 만들고 싶다고 하자 원작자는 원곡의 의미를 꼭 지켜달라며 작은 거 하나하나까지 당부하는데 그때 리메이크, 참 어렵구나. 호되게 당했죠.”(조유진·보컬)

‘잘해야 본전’인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이들은 결론을 내렸다. 다시는 못하겠다는 것.

“원작자에게 찾아가 울고불고 빈 적도 있었어요. 자존심 상해서 못해 먹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우리도 원작자잖아요. 나중에 누군가가 ‘낭만고양이’를 제멋대로 리메이크한다면? 생각만 해도 속상하더라고요. 돈들이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음악에 대한 낭만은 끝까지 지킬 겁니다.”(연윤근·베이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