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 씨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이정호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현 부경대 정외과 교수), 정모 변호사 등과 만나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만남은 13일 KBS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KBS 관계자는 "김상진 씨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가운데 이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이 모처에서 모인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KBS 보도에 따르면 12일 오후 10시경 부산 연제구 연산동 부산지방국세청 앞 한 카페에서 이루어진 모임에서 정 전 비서관은 "(검찰이) 안되면 안 되는 것까지 다 하거든…"이라고 말했고 이 전 수석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그게 다 발부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은 "누가 어떻게 녹취를 한 건지 몰라도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검찰 고위 관계자도 "보도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짐에 따라 본보는 KBS 보도가 방송된 후 이 전 수석을 부산 부경대 연구실에서 만나 당시 상황 등에 대해 물었다.
-어제 모임은 대책회의였나.
"대책회의를 칸막이도 없는 호프집에서 하겠느냐. 요즘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윤재에게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보는 김에 가까운 사이인 정 변호사도 같이 보자고 얘기가 됐다. 정 변호사 집 근처로 우리가 가서 만났다."
-정 전 비서관이 뭐라고 하던가.
"초조하고 힘들다고 했다. 차라리 검찰에서 빨리 소환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 수사에 대해 뭐라고 했나.
"'요즘 특검으로 가니까 검찰이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안 되는 것까지 다 하려 한다'고 했다."
-이 전 수석은 뭐라고 말했나.
"윤재가 걱정하는 것 같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그게 전부 발부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해줬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 수사를 버티겠다고 했나.
"'잘만 버티면 홍보 효과가 몇 억짜리냐. 요즘에는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정 변호사가 위로 차원에서 얘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정 변호사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로 봤을 때 내가 그 말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 사건에 대해 정 전 비서관에게 들은 적이 있나.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이 김 씨에게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윤재를 불러서 '다 얘기해보라'고 했다. 2003년에 김 씨에게 후원금 2000만 원 받은 것을 얘기하더라. 가슴이 철렁했는데 윤재가 "형 걱정하지 마라. 합법적인 후원금을 받고 영수증 처리 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한 푼도 받은 게 없다. 깨끗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윤재에게 "그러면 됐다"고 말해줬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과 친인척 계좌추적까지 하고 있다.
"내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행담도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결국 다 무죄라고 밝혀지지 않았느냐. 이번 사건도 그렇게 될 것이다. 윤재가 돈 받은 게 나오고 구속돼야 빨리 끝날 텐데 그런 게 없으니까 (검찰이) 사건을 질질 끄는 것 아니냐."
-정 전 청장을 아느냐.
"나는 개인적으로 모른다. 이번 사건이 나고서야 알았다. 윤재도 정 전 청장을 서울에서 여러 명 만나는 자리에서 본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 전 청장이 구속된 뒤 이 전 수석이 부산 언론사 기자들과 만나 '현금으로 1억 원을 받았다면 검찰 수사과정에서 안 받았다고 하면 처리해줄 텐데 그 사람은 왜 (돈 받았다고) 순진하게 불어가지고 구속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7월말) 청와대 그만두고 아마 가까운 기자들과 만난 자리였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이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면 굳이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얘기 나누는 과정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정상곤 전 청장이 구속되는 과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먼저 꺼낼 수 있겠나.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전 수석은 이에 대해 재차 확인하자 "생각해보니 그 말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상곤 전 청장이 구속되는 과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런 식의 말을 하자 내가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대꾸하는 정도가 아니었겠나"라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통화에서 "나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위로 수준의 말만 오갔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KBS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KBS 관계자는 "관련자들이 법적인 대응을 한다면 적절히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부산=황장석기자 surono@donga.com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