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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교육발전 공로로 인촌상 받은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입력 | 2007-09-14 03:07:00

올해 교육 부문 인촌상을 수상한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은 지도자는 말보다 행동으로 실사구시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불필요한 이념 논쟁과 평준화 일변도의 규제로 우리 사회가 정체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재명 기자


“지도자는 말이 많으면 안 됩니다. 묵묵히 행동으로 성과를 보여 줘야죠.”

온화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김정배(67) 전 고려대 총장도 대입 문제 등 여러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눈을 내리감았다. 거친 말만 난무하고 발전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고등교육 발전과 고대사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인촌상(교육 부문)을 수상한 김 전 총장은 “학자가 신문 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좋지 않은데…”라며 겸연쩍어했다.

“중국 답사 길에 칭화(淸華)대에 들른 적이 있는데 ‘행승어언(行勝於言·행동이 말을 이긴다)’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더군요.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저력이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는 데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김 전 총장의 업적을 보면 행승어언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고려대 교수 시절 교무처장, 문리대학장, 부총장 등 많은 보직을 거쳐 학내에 그의 추진력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총장으로 재직한 1998년부터 4년 동안의 행보는 아직도 다른 대학 총장들 사이에 회자될 정도로 숨 가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온 나라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총장이 되면서 ‘모금, 구조조정, 절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밤낮 없이 뛰었습니다. 퇴임 무렵엔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보람으로 남습니다.”

김 전 총장은 취임 직후 “대학에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하겠느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는 “당시 고려대 구성을 살펴보니 교수와 직원의 수가 거의 같았다”면서 “군살을 빼고 학문 연구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조직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조가 한 달 넘게 파업을 하며 총장 퇴진을 외쳤지만 김 전 총장은 3년 치 연봉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300여 명을 줄였고 연간 100억 원의 인건비를 삭감할 수 있었다. 김 전 총장은 “지도자는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면서 “대학 스스로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려운 여건에서도 흔쾌히 기부하는 기업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직접 기업 행사 등을 찾아다니며 모금활동을 벌여 4년간 2400억 원의 모금을 이끌어 냈다. 이를 바탕으로 교수들의 연구비를 올리고,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한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 등을 준비했다.

김 전 총장이 본관 앞 운동장을 없애고 지하광장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을 때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매일 공사장을 둘러보고 강원 양양군까지 좋은 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등 행동으로 대처했다. 도서관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 고려대 지하광장은 다른 대학들이 연달아 벤치마킹을 하러 올 정도로 명물이 됐다.

“요즘 10년은 과거의 100년만큼이나 급속도록 변화하는데 아직도 해묵은 이념 논쟁에 빠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각자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다면 보수니 진보니 하는 논란은 정말 불필요한데 말이죠.”

김 전 총장은 대학 입시나 특수목적고 규제를 비롯한 교육 정책이 이념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평준화 논리를 강조하다 보니 우수한 학교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 많다”면서 “개별 대학의 내신 실질반영비율의 소소한 단위까지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외국 신문 가십난에 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특히 사립대의 생명은 자율성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금처럼 모든 부분에 간섭을 하면 외국 대학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학이 군대와 다른 점은 변화와 창의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자율성이 보장돼야만 가능한 일이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라면 3불(不) 정책이 아니라 4불, 5불 정책을 쓴다 해도 반대할 수 없지만 사립대까지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예요.”

사학자인 김 전 총장은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실사구시를 통한 발전”이라고 지적하며 “지도자란 실용성을 추구해 국민의 평안을 생각해야지 말을 앞세우고 치적을 알리는 데 급급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사회가 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본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이겠지만 선거철만 되면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있고, 권력을 쥐고도 돈을 탐하는 관료가 있다”면서 “요즘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갖가지 권력형 비리도 모두 본분을 망각하고 도를 넘은 탓”이라고 꼬집었다.

김 전 총장은 학자답게 모두가 평생 공부와 수양을 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는 “교육을 받는 이유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서로 배우고 인격적 눈높이를 높이는 과정을 통해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라며 “특히 지도자는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품격 있는 말과 고급스러운 행동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1940년 서울 출생 △1964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

△1975년 고려대 대학원 문학박사 △1970∼2005년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1982∼2003년 국사편찬위원회 편찬위원 △1990∼1992년 고려대 서창캠퍼스 부총장, 한국고대학회 회장 △1992년 고려대 부총장 △1995∼1997년 한국사연구회 회장 △1998∼2002년 고려대 총장 △2004∼2006년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 △2006년∼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이사 △저서: ‘한국 민족문화의 기원’(1973년) ‘한국 고대의 국가 기원과 형성’(1986년)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2000년) 등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