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한나 홈스 지음·이경아 옮김/392쪽·1만7000원·지호
우주 암석, 나무껍질, 개미 다리, 공룡 뼈, 타이어 고무 조각, 꽃가루, 박테리아의 공통점은? 먼지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아주 작아서 하찮은 것, 닦아 내야 할 티끌….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미세먼지를 제외하면 흔해 빠진 먼지에 대해 정색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작정하고 먼지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분야를 따진다면 딱딱할 수 있는 자연과학책이지만 저자의 재치 있고 쉬운 설명 덕분에 술술 잘 읽힌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난 느낌이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등에 칼럼을 쓰는 과학·자연사 전문작가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이론과 글쓰기를 겸비한 대중과학 저술가의 존재가 부럽다.
알고 보면 먼지는 기후학 면역학 등 과학자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먼지는 대기로 날아올라 지구촌 곳곳에 퍼진다. 먼지의 여행 덕분에 로키 산맥에 가지 않고도 로키 산맥이 침식 중인 사실을 알 수 있다. 필리핀에 가지 않고도 필리핀에서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쓱 닦아 버린 먼지는 사실 날씨, 기후는 물론 땅, 바다, 우리 폐부 깊숙한 곳까지 바꿀 엄청난 힘을 지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이 만들어 낸 먼지는 ‘큰 먼지’다. 꽃가루는 콧속에 들러붙을 만큼 크다. ‘자연 먼지’는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1cm=1만 μm)보다 크다. 문제는 이보다 작은 ‘위험한 먼지’다. 수은 납 다이옥신 폴리염화비페닐 방사능 등의 먼지다. 인간이 만든 먼지는 부메랑처럼 우리 몸속에 쳐 놓은 올가미를 통과해 폐 속 깊숙이 침투한다. 질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공기 없이 못 살 듯 먼지 없이 살 수 없다. 저자는 너무 깨끗한 세상은 숨 막히고 무더울 것이라고 말한다. 설명을 들어 보자. 수증기가 응결하려면 먼지가 충분해야 한다. 수증기는 먼지의 작은 표면 위에 모인다. 먼지가 없으면 상대습도가 300% 정도에 이를 때까지 수증기는 응결하지 않는다. 하늘에 구름이 없어지고 지구엔 끔찍한 더위가 덮칠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친숙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재치 만점의 설명 덕분에 어려운 과학적 설명도 지루하지 않다. 예컨대 이렇다.
“매년 10억 t에서 30억 t에 이르는 사막 먼지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10억 t은 화물칸 1400만 대가 달린 기차를 꽉꽉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기차는 지구 둘레를 여섯 번 휘감을 길이일 것이다.” “여름철에 해변을 맨발로 걸어 본 적 있는가. 모래가 대기보다 훨씬 뜨겁다. (마찬가지로) 대기 중에 떠 있는 뜨거운 모래와 먼지 입자는 대기와 사람에게 열을 발산하는 라디에이터다. 모래 먼지 폭풍은 지구 생명체를 모두 탈수 상태에 빠뜨릴 만큼 잔인하다.”
먼지의 힘을 보여 주는 사례도 재미난 게 많다. 몽골 고원 중부의 고비 사막에서 공룡 오비랩터의 화석이 발견됐다. 둥지를 떠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완벽한 화석이다.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뗀다. “알둥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공룡을 그렇게 빨리 깊숙이 파묻은 것의 정체는 뭘까? 그건 먼 옛날에 벌어진 미궁의 살인사건이다. 용의자로는 먼지를 꼽을 수 있다.”
이후 과정을 요약하면 ‘오래전엔 고비사막에도 습기가 있었는데 지각변동으로 습기가 사라졌다. 사막이 생기고 먼지가 생겼다. 먼지 폭풍에 공룡이 파묻혔다’ 정도일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흥미진진한 SF 소설을 읽는 듯하다. 예의 감성 어린 표현으로 공룡 앞에 닥친 위기를 설명한다. “오비랩터가 알둥지에서 공상에 잠겨 있는 동안 공기 중의 소금 결정이 석회석 자갈 위로 떨어져 내렸다…바람이 잦아들면서 먼지는 오비랩터의 머리 위 허공을 높이 떠돌았다.”
봄마다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가 무분별한 개발 탓이라는 과학적 설명 뒤에 이어지는 저자의 말을 들으면 황사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몽골 목동이 쓰던 화려한 색깔의 실크 모자. 죽은 야생 양파의 얇은 껍질. 모닥불을 피우고 생긴 재. 말의 뼈, 심지어 대륙을 호령한 칭기즈칸의 몸의 일부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도 미래도 모두 먼지 속에 있다. 비유하자면, 먼지는 시간인 셈이다. 우리가 죽어 남길 먼지 역시 국경을 넘나들며 대기를 떠돌게 될 것이다. 저자는 “흙으로 되돌아가 결국 수백 년 혹은 수백만 년에 걸쳐 침식작용이 일어나면서 우리 몸은 산산이 흩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수백 년 전 조상의 흩어진 몸이 바로 내 곁에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먼지 앞에 한층 숙연해진다. 원제 ‘The secret life of dust’(2001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