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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유혹…‘약물 파워’ 걸리면 선수생명 치명타

입력 | 2007-09-19 03:03:00


한화 이범호는 지난해 3월 19일 미국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의 4강전 직후 2명의 남성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경기장 내 라커룸으로 불려 간 그는 작은 병에 자신의 소변을 담아야 했다. 흥분제나 근육강화제 복용 여부를 가리기 위한 도핑(금지약물 사용) 검사였다.

이범호는 “WBC 측으로부터 도핑 음성 반응이 나왔다는 통보를 받고 안심했다. 이제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금지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도핑 검사가 전격 실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 반도핑위원회는 프로야구 두산과 한화의 잠실경기, SK와 현대의 문학경기 직후 팀별로 3명을 무작위 추첨해 소변 샘플을 채취했다. 나머지 구단도 올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도핑 검사를 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도핑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도핑 검사 필수” vs “일부 허용할 수도”

프로야구 선수 대부분은 도핑 검사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롯데 이대호는 “도핑 검사는 세계적 추세다. 약의 힘으로 운동을 잘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깨기 위해서라도 도핑 검사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두산 홍성흔도 “은밀히 퍼져 온 도핑을 뿌리 뽑아야 프로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일부 선수는 도핑 검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도핑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LG 최동수는 “내 주위에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는 없다. 그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거나 보약을 장기 복용해도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적정 수준의 약물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능이 있어야 약물도 효과를 보는 것이다. 약물을 남용하는 경우만 제재하는 게 좋다고 본다.”

○ 금지약물, 빠져나올 수 없는 마약

반도핑위는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기준에 맞춰 흥분제와 근육강화제 등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난 선수는 올해는 명단만 공개하고 내년에는 최고 영구 제명 등 강력한 징계를 할 방침이다. 이들 금지 약물은 일단 복용하면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기 때문.

반도핑위 경희대 이종하(재활의학과) 교수는 “금지 약물은 일시적으로 몸 상태를 좋게 만들지만 계속 복용 수위를 높여야 해 심장과 간 등에 치명적이다. 커피나 박카스 등 카페인류는 과다 복용만 하지 않으면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 실시된 도핑 검사 샘플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 컨트롤센터에서 분석 과정을 거쳐 7∼10일이면 금지약물 복용 여부가 가려진다. 하지만 명단 공개까지는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성 반응자에 대한 재분석과 해당 선수의 소명 절차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번 도핑 검사에서 유명 선수가 양성 반응이 나올 경우 그 파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