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깨 한 번 쭉 펴시고, 어때요 시원하시죠.”
“어, 시원하다. 아가, 어디서 왔노?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뭐라고 베트남에서 왔다고, 아이고 멀리서도 왔네….”
18일 낮 12시 대구 달서구 진천동의 양로원인 성산복지재단. 추석을 앞두고 이 양로원의 어르신 100여 명을 위해 대구에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 여성 14명이 이곳을 찾아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을 펼치자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노인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국인과 결혼해 대구에 정착한 이들 이주 여성은 주한베트남여성문화센터(VWCC·대구 달서구 두류동)에서 개설한 한글교실에서 우리말과 문화 등을 배우고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이곳을 찾은 이들 이주 여성은 직접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떠먹이는 등 식사 수발을 들고 양로원 구석구석을 돌며 청소를 한 뒤 조그마한 추석 선물 꾸러미를 노인들 손에 쥐여 드렸다. 선물은 이들이 각자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베트남 이주 여성 윈티화(38) 씨는 “추석을 맞아 한국의 할머님과 할아버님들께 고향의 부모님을 모시는 것처럼 정성을 다했다”며 “한국으로 온 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그동안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고 흐뭇해했다.
또 응오티투현(29) 씨는 “노후를 어렵게 지내시는 할머니들이 우리처럼 무척 외로워하시는 것 같았다”며 “자주 이곳을 찾아 친딸 노릇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벌인 금민영(사회복지사) 씨는 “지역의 상당수 베트남 이주 여성들이 아기를 돌보느라 이번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해 무척 아쉬워했다”며 “앞으로 베트남 이주 여성들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VWCC 구교훈 사무국장은 “한국인과 결혼해 아이를 키우면서 현지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든 나날을 보내는 베트남 여성들이 먼저 ‘어려운 한국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해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VWCC는 한국인과 결혼해 이주한 베트남 여성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글교실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