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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바다 농장 검은 진주가 익어간다

입력 | 2007-09-21 03:02:00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가. 그곳은 짙푸른 바다 속을 동경하는 스쿠버 다이버의 천국이었다. 12일 찾은 한-남태평양해양연구센터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미크로네시아의 추크 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괌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추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 3000명이 미군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6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과학자들이 이곳 앞바다를 흑진주를 대량 양식하는 바다의 보물 농장으로 가꾸고 있다.

○ 최대 양식지 타히티보다 반년 빨리 자라

한국해양연구원과 추크 주정부가 2000년 공동으로 설립한 한-남태평양연구센터 앞마당에 들어서면 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떠 있는 노란색 부표가 눈에 들어온다. 흑진주 조개 양식장이다.

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흥식 박사는 “이곳에서 흑진주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빠르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흑진주 양식지인 타히티에서는 보통 18∼24개월은 키워야 상품이 된다. 그러나 이곳에선 14개월이면 족하다는 설명이다. 흑진주를 키우는 흑접조개는 타히티를 비롯한 폴리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 바다에서 모두 볼 수 있지만 성장 속도는 미크로네시아 쪽이 빠르다는 얘기다.

흑진주가 자라는 건 바다에 녹아 있는 다량의 양분과 관련이 많다. 양분 공급의 1등 공신은 바닷가에서 빈틈없이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 추크 주의 얕은 바다에 뿌리를 박고 사는 맹그로브는 서로 얽히고설켜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숲에서 양분이 흘러나가면서 바다를 기름지게 한다.

○ 몇 년생 조개에, 어떤 수심에서 키우느냐가 비결

이곳 바다가 흑진주를 키우기에 적합한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해양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이곳에는 흑접조개에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없다. 좁은 지역에서 진주조개를 대량 양식하는 타히티 앞바다에는 질병 바이러스가 많다.

게다가 추크 주 앞바다의 수온은 흑접조개가 자라기 좋은 24∼29도를 항상 유지한다. 양식을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흑진주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진주의 ‘집’ 역할을 하는 조개를 배양해야 한다. 그리고 크기가 10cm 수준인 2, 3년생 조개를 골라 입을 벌리고 진주의 ‘씨앗’이 될 작은 조개껍데기를 삽입한다.

이때 진주의 성장을 돕기 위해 다른 조개의 껍데기 안쪽 바로 아래에 있는 살을 각설탕보다 작게 잘라 ‘씨앗’과 함께 넣는다. 작업이 끝나면 조개를 수심 5∼8m에서 키운다. 몇 년생 조개를 골라야 하는지, 어느 정도 수심에서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모두 박 박사팀이 알아낸 비결이다.

○ 지름 1cm면 50만 원 호가

흑진주는 지름 10mm짜리가 보통 40만∼50만 원이나 한다. 저개발 국가인 미크로네시아의 일용직 노동자가 한 달 평균 3만∼4만 원 버는 것을 생각하면 연봉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곳 주정부가 박 박사팀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흑진주가 가진 높은 부가가치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실력자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식초에 넣은 진주도 흑진주였다.

첫 번째 목표는 인도 시장이다.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여 구매력이 높아지는 데다 인도인들이 흑진주를 매우 애호하기 때문이다. 박 박사는 “인도인은 검은 보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앞으로 흑진주 양식을 본격 시작하면 미크로네시아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크로네시아=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