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어기에 어선과 운반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던 바다를 파시(波市)라 불렀다. 그 규모가 커지면서 선원과 상인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숙박시설, 점포 등이 어장 근처의 육지에 마을을 형성해 자연스럽게 어획물을 거래하면서 육지에도 파시가 생겼다.
특히 인천의 옹진군 연평도 파시는 규모가 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어선들로 연결된 배 위를 걸어 인근의 다른 섬까지 갈 수 있었을 정도로 풍요로움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연평도가 2003년부터 중국 어선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으로 몰려와 불법 싹쓸이 조업을 일삼고 해양환경의 변화로 꽃게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해 어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탄식만 가득한 섬으로 변해 가고 있다.
중국 어선은 선단을 이뤄 연중 NLL 북쪽 수역에서 남하해 조업하다 해경이나 해군과 출동하면 다시 북쪽으로 도주하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마다 꽃게 조업시기가 되면 연평도 주변 해역은 ‘꽃게전쟁’으로 부를 만큼 양국 어민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급기야 2005년 5월에는 연평도 어민들이 어선 30여 척을 NLL 부근까지 끌고 가 중국 어선 4척을 억류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어장을 되살리기 위해 △바다목장 조성 △어선 감척 △바다쓰레기 수거 △꽃게 치어 방류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해경은 해군과의 정보교환을 통해 NLL 주변 해역에서 북한 경비정과 중국 어선의 동향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 NLL을 남하해 조업할 경우 신속하게 출동해 2003년부터 최근까지 중국 어선 361척을 나포했다. 꽃게 조업 시기에는 연평도에 해경 특공대와 고속보트를 배치해 단속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한중 해상치안기관장 회의와 어업지도 단속회의와 같은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한 자체 단속을 강화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 해경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민들도 어장을 되살리고 보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꽃게가 다시 연평도를 찾을 것이다. 그래야 이젠 희미한 옛 추억으로 남아 있는 연평도 파시도 다시 열려 어민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혁수 치안감·해양경찰청 경비구난국장 yhs147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