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연이은 태풍에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가을이지만 내일부터 추석 연휴다. 옛 시인은 귀촉도(歸蜀道·두견이) 우는 가을밤에 지는 꽃을 보며 자연과 인생의 섭리(攝理)를 관조(觀照)한다. 그렇게 깊어 가는 가을날, 서로 보듬고 때로는 상처 주는 민감한 속살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한데 모이는 추석이다.
강금실 씨 말이 옳다
추석은 여론의 너른 마당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족과 친지, 이웃들의 만남에서 세상사가 이야기되고 그것이 모여 거대한 민심이 된다.
누구를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이는 5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형식적 주권 행사가 아니다. 우리네 삶의 모든 것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이다. 어떤 리더십에 나라의 외교와 국방, 경제와 사회를 맡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12월 대선의 화두(話頭)가 경제임은 명백하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 4년간 세계 평균경제성장률(4.9%)에도 못 미친 4.25%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잠재성장력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적표를 놓고 ‘멀쩡한 경제’라고 강변(强辯)한들 국민이 수긍할 리 없다. ‘멀쩡하지 못한 경제’가 ‘경제 대통령’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중요한들 그것이 국정의 모든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은 ‘깽판 쳐도’ 경제만 잘되면 괜찮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이 ‘깽판’인데 경제만 잘될 리도 만무하다. 더구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개별 정부가 그 나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을 온전히 컨트롤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유가가 폭등하거나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것을 한국의 특정 정부가 조정할 수 있겠는가. 결국 경제성장률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의 활력을 일으킬 수 있는 리더십이고,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에 있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국민 신뢰를 엮어 내는 통합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볼 때 이른바 미래세력이라는 대통합민주신당의 모습은 참담할 지경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씨는 신당의 대선후보 경선(競選)에 대해 “친노(親盧) 비노(非盧) 구도라는 말 자체가 과거를 표상(表象)할 뿐 미래를 담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친노, 비노 하면서 무슨 미래를 내세우느냐는 힐난(詰難)이다. 하물며 국민경선은커녕 ‘차떼기 동원경선’으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키면서 ‘대통합’을 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더라도 당당하게 패배할 수 있어야 미래가 있다.
권력이 휘두르던 도덕성의 칼이 부메랑이 되어 제 몸을 베고 있다. ‘변양균-신정아 사건’이나 대통령이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던 ‘정윤재(전 대통령의전비서관) 비리’의 본질은 자신들만 깨끗하고 도덕적이라던 권력의 독선(獨善)에 있다. 그들은 결코 미래가 될 수 없다.
경박한 말, 품격 없는 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어제의 흠’을 덮어 주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내일의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묻혀 있던 어제가 언제라도 깨어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음을 뜻한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경제만으로는 안 된다. 정치를 잘해야 하고, 그러자면 ‘지도자의 언어’부터 익혀야 한다. 경박(輕薄)한 말은 지도력을 훼손시키고 품격 없는 말은 갈등을 낳는다. 노 대통령이야말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니던가.
노무현, 이명박,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에서 변양균-신정아, 정윤재 등에 이르기까지 올 추석 여론마당에 오를 인물과 이야기들은 넘쳐날 것이다. 말들이 모여 민심이 되고, 민심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동력(動力)이 되어야 한다.
‘ㅱ하 노피곰 도ㅱ샤 머리곰 비취오시라’(달님이시여! 높이 돋으시어 멀리 비춰 주소서)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