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멋지게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 동안 가진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민노당이야말로 한국의 진보를 대표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며 “대선에서 진정한 진보주의자로 국민에게 평가받겠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인기를 끌었던 권 후보는 이번 대선에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를 내세웠다.
권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사이비 개혁세력’ ‘진보의 탈을 쓴 부패정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전현직 대통령의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해서도 “개입할수록 한나라당을 도와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내 상대는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다. 이 후보에게 맞짱 토론을 제안한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북한 인권 등 예민한 질문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노당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 ‘민노당 위기설’에 동의하나.
“민노당이 반성하고 새롭게 나가야 하지만 위기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노당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열린우리당의 몰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정당이다. 국민은 노무현 정부를 좌파 진보 개혁 정권으로 보고 있어 민노당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억울하고 답답하다.”
―벌써 세 번째 대선 도전이다. 왜 또 권영길인가.
“절차로 보면 사실상 첫 번째 도전이다. 1997년 출마에서 민노당 창당의 토대를 구축했고, 2002년 출마를 통해 민노당의 원내 진입 기반을 만들었다. 이번 출마는 진보의 집권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다.”
촬영 : 이종승 기자
―민노당의 최대 지주인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행태에 비판이 많다.
“대기업 중심의 정규직 노조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도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귀족노조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정치계와 재벌 대기업이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부유세를 걷을 것이다. 대상은 50만∼60만 가구 정도이며 1∼3% 누진세율을 적용하면 6조 원 정도 거둘 수 있다. 이 돈으로 교육에 투자하면 임기 내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시행 중인 종합부동산세도 부유세의 초기 단계 성격이다.”
―현 정부가 이미 세금을 많이 올렸다는 불만이 많다.
“요즘 국민이 ‘이게 나라냐’고 한다. 세금만 걷었지 나라가 해준 게 없다. ‘사회복지목적세’를 만들겠다. 소득세 법인세 특별소비세 상속증여세 납부액에 대해 10∼30% 세율로 사회복지세를 부과할 것이다. 납부액의 80∼90%를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부담케 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국가부채가 급증한 데 대한 우려가 많다. 어떻게 줄일 것인가.
“세금을 제대로 걷고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 세무조사와 탈세범 처벌을 강화하겠다. 예산낭비심판원을 설치하고 예산 낭비 배심원제, 예산 낭비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겠다. 또 예산실명제를 도입해 책임자를 확인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는 상류 부유층이 독점하고 있는 일류대 진학코스, 학원으로 전락했다. 서민층은 입학하겠다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권 후보가 되면 기업이 투자를 하겠나.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윤’ 위주의 주주자본주의에 칼을 대야 한다.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하지 않는다. 중소기업 투자를 늘리기 위해 서민은행을 설립해 대출 비중을 높이겠다. 수출만능주의 대신 내수를 우선하는 정책을 펴겠다.”
―북한의 핵 폐기 약속 없이도 한반도 평화선언을 할 수 있다고 보나.
“평화선언은 당면한 절박한 과제다. 반면 핵무기 폐기는 수년이 걸릴 사안이다. 한반도 평화선언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야말로 핵 폐기를 촉진할 수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노당이 정작 북한의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에 인권 문제 없는 나라가 있겠나. 북한에도 인권 문제 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한반도에서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대북 지원, 북-미 관계 개선 등을 통해 남북 신뢰가 돈독해지면 인권에 대한 상호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성공한 정부인가 실패한 정부인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스스로 사이비개혁세력이라는 것을 증명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성공한 정부’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대선 개입이 도를 지나쳤다는 논란이 많다.
“노 대통령은 변양균 씨 사건으로 할 말이 없을 것이고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소임을 다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주변에서 ‘이번 대선에 DJ와 노무현이 다시 나온 거냐. 한 번 했던 사람들을 또 뽑을 수 있는 거냐’는 농담을 들었다.”
―이명박 후보보다 앞선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이 후보는 ‘감세’ ‘규제완화 또는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걸고 있다. 반면 민노당은 ‘증세’ ‘황제식 재벌 해체’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를 주장한다. 이명박의 경제는 노동자를 대량 해고해 서민의 빈 지갑, 빈 밥그릇도 뺏어가는 ‘절망의 경제’이나 권영길의 경제는 ‘희망의 경제, 사람의 경제’다.”
―통합신당의 후보 중 누가 가장 싸우기 어려운 상대인가.
“누가 선출되건 명분도 자격도 없다. 누가 나와도 신경 쓰지 않겠다. 내 상대는 이명박 후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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