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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前법무에 “내년 총선 출마해서 도와달라” 권유

입력 | 2007-09-27 02:59:00


노무현 대통령이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에게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26일 뒤늦게 알려졌다.

김 전 장관 측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7월 28일 식사를 함께하자는 노 대통령의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으며,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사의를 표명한 김 전 장관에게 “(내년 총선에 출마해) 도와 달라”고 했다는 것.

김 전 장관이 “저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거절하자 노 대통령은 “내년 2월쯤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거듭 총선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서 총선 출마 제안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세월이 지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부인하지 않았다.

경남 남해 출신인 김 전 장관은 이전에도 노 대통령 측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간접적으로 제안 받았으나 답변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출마 권유는 내년 4월 총선 때도 노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구상과 이른바 ‘노무현 신당’의 출현 여부가 주목된다.

▽‘노무현 신당’ 총재?=노 대통령은 내년 2월 25일 청와대를 떠나더라도 정치에서 손을 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 구상과 관련해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는 발언을 종종 해 왔다. 지난해부터 자신의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상대로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데 노사모와 노무현의 할 일이 끝나는 것이냐”며 친노(親盧·친노무현) 그룹의 재결집을 꾀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노 대통령을 보좌해 온 386 측근들도 대부분 40대 중반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를 계속하려 하고 있다.

범여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과 친노 진영은 대선보다 내년 총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코드가 맞는 그들끼리 세력을 형성할 발판은 ‘노무현 신당’을 통한 총선이며, 노 대통령이 꾀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총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 정부에서 장차관 등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주축인 참여정부평가포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참평포럼 대표는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이고, 상임집행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 씨다.

참평포럼은 서울 경기 등 전국 15개 시도에 지역포럼을 두고 있다. 정당의 시도당 시스템을 원용한 준(準)정당 조직인 셈.

안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어떤 형태로든 노무현 정치의 흐름은 이어져야 한다. 대선에서 패배해 정권이 교체된다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6월 2일 참평포럼 특별강연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는 노사모에 있으며, 노사모 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서 참평포럼에 민주주의 미래가 있다”고 했다. 참평포럼이 총선용 조직, ‘노무현 신당’의 사전 단계라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 때 직접 나설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민병두 의원과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은 6월 “노 대통령이 직접 출마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선거 60일 전(내년 2월 9일)에 공직에서 사퇴하도록 한 선거법 규정상 임기 전 대통령직 사퇴를 전제로 해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말도 안 되고, 0.1% 가능성도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의 등 떠미는 정치판?=노 대통령이 총선에서의 ‘역할’을 모색 중인 데는 정당 구도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범여권의 대통합민주신당은 사실상 집권 여당이지만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제(諸)정파들이 대선이란 물리적 시간에 쫓겨 급조한 정당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다. 대선이 끝난 뒤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범여권 대선후보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비노(非盧·비노무현) 그룹 인사로 확정될 경우 친노 그룹이 함께하기 어렵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대선 후보가 될 경우엔 스펙트럼이 넓은 비노 그룹의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재선 의원은 “상당수 의원이 대선용 정당과 총선용 정당은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며 “솔직히 대선보다는 총선에 관심이 쏠려 있다”고 했다.

따라서 친노 그룹이 노 대통령의 퇴임 후인 내년 4월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옛 상도동계나 동교동계 같은 ‘계파’를 형성하기 위해 참평포럼을 전위대로 삼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친노 의원들은 범여권 친노 후보 단일화 전에 만나 대선 후 단일대오를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노 그룹은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문병호 의원은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특정 정파와 특정 세력을 배후로 정치행위를 할 경우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며 “국가 원로로서 나라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다른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장관 임명 전에 총선 출마 의사 타진?=범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장관 인사 때마다 18대 총선 출마 의사를 타진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영남 출신 한 검사장이 고검장(장관급) 승진에 실패했을 때 법조계에서는 노 대통령이 고검장 승진의 전제로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제안했으나 이 검사장이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정치권에서는 부산 출신인 김만복 국가정보원장도 총선 출마를 제안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원장이 고향인 부산 기장군 주민들을 초청해 국정원을 구경시키고 지역 행사에 축하 화환을 보내는 등 사전선거운동으로 오해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해 왔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선거 중립의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김 원장이 대통령의 양해와 교감 없이 정치활동으로 오해받을 일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