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 등록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가 도용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은 27일 서울의 한 PC방에서 노 대통령의 명의가 도용될 당시 PC방 내 컴퓨터 여러 대가 선거인단 접수에 이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선거인단 허위 등록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명의가 도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한 PC방에서 노 대통령의 명의 도용이 이뤄질 당시 PC방 컴퓨터 5대가 비슷한 시간대에 대통합민주신당의 선거인단 등록 사이트에 접속했다.
경찰은 5대의 컴퓨터를 몇 명이 사용했는지, 어느 컴퓨터에서 노 대통령의 명의 도용이 이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적어도 두 명 이상이 동시에 5대의 컴퓨터를 사용해 선거인단을 허위 등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명이 5대의 컴퓨터를 옮겨 다니며 등록할 경우 다른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컴퓨터 5대의 하드디스크를 모두 압수해 분석하고 있으며 2, 3일이면 컴퓨터 사용자의 신원을 파악해 누가 명의를 도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주요 포털사이트 등의 협조를 얻어 현재까지 확인한 컴퓨터 사용자의 인터넷 ID의 실제 인물을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대통합민주신당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의 명의 도용에 대해 ‘누군가 대통합민주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의 옛 당원 명부 등을 이용해 선거인단을 무더기로 허위 등록하던 중 실수로 과거 당원이었던 노 대통령 이름까지 등록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향후 수사 진척에 따라서는 열린우리당 당원 명부에 접근할 수 있는 청와대나 정당,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경찰은 명의를 도용한 범인에 대해서는 사(私)전자기록 위·변작, 업무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수사 의뢰된 것은 노 대통령 명의 도용 1건이지만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명의 도용도 확인되면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는 “어느 후보의 선거캠프든지 이번 사건과 연관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경선을 진흙탕으로 만들었다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며 “경선 중도 포기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