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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세계의 명산 위대한 등정’

입력 | 2007-09-29 03:03:00

프랑스 알프스의 몽블랑 산군. 1786년 8월 8일 자크 발마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가 처음 등반에 성공했다. 자연이 빚어낸 산의 위용. 그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 그러나 열정만큼은 숙연하다. 위대함은 크기에 있지 않다. 사진 제공 위즈덤하우스


◇ 세계의 명산 위대한 등정/스티븐 베너블스 지음·호경필 옮김/192쪽·4만8000원·예담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말했다. “사람이 산에 가면 위대한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글쎄,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은 얘길까. 아니다. 이 역사는 결이 다르다. “혼잡한 도시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경험. 성역을 들여다볼 기회. 산은 한 줌 인간이 태고의 자연을 엿보는, 존귀한 역사를 마련한다.

‘세계의 명산…’은 그 위대한 역사의 기록이다. 세계 34군데 명산에서 이뤄진 35번의 도전을 다뤘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텐징 노르가이와 에드먼드 힐러리 등 전설적인 등반가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여정은 장대하다. 저자는 K2나 몽블랑만 소개하지 않는다. ‘펄펄 끓는 얼음’ 남극의 활화산 에러버스 산, ‘바다에 솟은 산’ 볼스 피라미드(호주), 적도의 얼음산 케냐 산…. 세계 곳곳에 숨은 보석을 소개한다. 대형 판형에 실린 사진은 말 그대로 그림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35편의 스토리도 한 편의 영화다. 알프스 아이거 편에선 아버지가 개척 등반하다 추락 사망한 북벽 직등 루트에 도전하는 존 할린 3세를 다룬다. 여성의 몸으로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핀스터아어호른 산 북벽에 도전했던 거트루드 벨, 베네수엘라의 아우타나 수직 남서벽에 도전한 존 애런 부부의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하다.

더 큰 매력은 이 위대한 등정이 꼭 성공을 뜻하진 않는다는 데 있다. 1951년 몽블랑의 ‘수직 첨탑’ 그랑카퓌생 동벽을 최초로 오른 발터 보나티.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시련에 주목한다. 책은 1961년 보나티를 포함한 7명이 몽블랑의 중앙 필라 루트를 개척하다 4명이나 숨진 얘기를 다룬다. 비록 실패했으나 “초인적인 추진력과 용기”로 2명을 구해낸 보나티. 거기서 위대함을 찾는다.

저자는 말한다.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는 영혼을 자극한다.” 뉴질랜드 마운트 쿡에서의 조난으로 두 다리를 잃은 마크 잉글리스. 2006년 잉글리스는 두 발 없이 에베레스트를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된다. 캐나다 로건 산에서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한 에릭 비야르나손은 딸을 안고 말했다. “내 아이를 안는 데 필요한 건 손가락이 아니라 껴안으려는 마음이다.”

가격이 부담스럽긴 해도 가치는 크다. 저자는 1988년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최초의 영국 산악인. 옮긴이는 동국대 산악부 OB이자 한국산악회 편집이사 출신이다. “우리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힐러리) 산이 아니라, 산을 사랑한 사람의 냄새가 가득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