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준비 작업이 심상치 않다. 북한에 안겨 줄 선물 보따리는 자꾸 커지고 양보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북의 체제 선전극인 아리랑을 참관하기로 결정했고, 청와대는 국내 친북(親北) 사이트의 접속 제한 해제까지 한때 검토했다. 실질 임기가 3개월도 안 남은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정치적 흥행을 위해 국기(國基)를 흔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대북 지원책에 국민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신의주 특구 공동 개발, 제2의 개성공단 추진, 남북투자청 신설, 평양 인근에 정보기술 공단 신설 등 셀 수조차 없다. “대북 제안을 포함한 회담 의제는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청와대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당국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정상회담의 ‘흥행’을 위해 정부가 교묘하게 흘리는 모양새다.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개성공단 같은 것을 몇 개 상정할 수 있다”는 말로 특구 개발 제의를 기정사실화했다.
대북 지원에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국민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졸속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노 정권은 국가재정을 심하게 악화시켰다. 그런 정권이 북에 적게 잡아도 수조 원에 이르는 ‘약속어음’을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국민의 허리가 휘는 상황에는 눈을 감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노 대통령의 아리랑 관람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아리랑은 북한 주민 10만여 명이 동원돼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을 펼치는 집단 공연으로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찬양하고 선전하는 내용 일색이다. 북이 우리를 의식해 내용의 일부를 수정한다 하더라도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신문은 최근 ‘아리랑에는 김 위원장의 통일의지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의지’란 곧 적화(赤化) 의지다. 우리 대통령이 이를 참관하는 것을 의전적 행사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아리랑을 보고 박수 칠 노 대통령의 모습이 북에 의해 두고두고 홍보거리로 이용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리랑은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 장기간 혹사시키기 때문에 아동 학대와 인권 침해 논란을 낳은 지 오래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든 축구공 하나도 구매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물며 어린 학생들이 선 채로 소변을 보아 가며 연출하는 광기의 집단극은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 인권 유린을 지적하지는 못할망정 방조할 셈인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친북 사이트 접속 제한 해제를 검토한 것은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기쁨조’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북한의 대남흑색선전기구인 ‘반제민족민주전선’을 비롯한 문제의 사이트 42개는 북의 주의·주장과 대남 혁명 전략 전술,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전파하고 있어 정부 스스로 차단한 것들이다. 정보통신부도 어제 밤 12시까지 친북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검찰청 국가정보원 경찰청의 불가(不可) 방침 통보를 무시하고 개방을 검토했다. 권력의 핵심부 안에 ‘맹목적 친북 세력’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비무장지대(DMZ) 문제와 묶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논의하려는 정부의 방침도 용납하기 어렵다. 해상 경계선인 NLL 재설정 문제를 논의하려면 국민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자칫 한 발을 잘못 내디디면 두고두고 북에 빌미를 줄 수 있다. 오죽하면 인천 옹진군이 주민들의 뜻을 모아 “NLL은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할 생존선”이라며 NLL 재설정 논의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겠는가.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좀 더 차분해져야 한다. 분단 해소 노력은 필요하지만 정상회담 한 번으로 하루아침에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북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세계 13위의 경제강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매사 당당해야 한다. 회담 흥행을 위해서라면 체통도 국가 정체성도 다 팽개치는 듯한 자세로는 김 위원장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고, 회담 성과 또한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