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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소설가가 추천하는 가을 시선 20]끝과 시작

입력 | 2007-10-01 03:01:00


《스스로에게 낯설고, 좀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스스로 알다가도 모르는 불확실한 존재./육신이 존재하는 한, 존재하고 또 존재하는 한,/영혼이 머무를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문’에서》

재미있는 일이다. 다들 차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는데 막히는 길은 더욱 막힌다. 내비게이션은 가장 빨리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기계인데, 다들 그 기계를 달았기 때문에 가장 빨리 가는 길은 가장 늦게 가는 길이 된다. 내비게이션은 왜 가장 빠른 길이 가장 느린 길이 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은 그토록 열심히 일했건만 삶은 왜 힘들어지기만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부채는 있는데, 홍조 띤 뺨은 어디 있나요?/칼은 있는데, 분노는 어디 있나요?’(‘박물관’) 가족사진첩 속에 형제들과 찍은 사진은 남아 있는데, 그 웃음은 어디로 갔을까?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을 읽으면 우리가 왜 과거나 미래에, 또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웃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만 웃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시인은 박물관에 가서 그 사실을 깨닫는다. 시인에게 박물관이란 오래된 유물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100년 정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을 보여 주는 극장이니까.

박물관은 역설의 극장이다. 전시된 부채는 그 부채로 가리던 홍조 띤 뺨을 보여 준다. 날이 선 칼은 그 칼을 움켜쥐고 적을 향해 돌진하던 기사를 보여 준다. 나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조명을 받고 있던 반가사유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들어지던 시대에 살았던 인간들은 지금 먼지가 됐노라.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반가사유상을 바라볼 때, 그 당시 인류 전체의 웃음과 울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이로도 웃을 수 없고, 해골로도 웃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웃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웃어야만 한다. 세상의 모든 내비게이션, 일류 대학으로 가라던 선생님들, 성공하려면 빈둥거리지 말라고 말했던 처세서들은 다 틀렸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없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될 수 없음을.’(‘작은 별 아래서’) 이런 문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먼 길을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길이다. 내비게이션의 역설, 박물관의 역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어릴 때는 국민총생산(GNP)이 1만 달러가 되면 잘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GNP 4만 달러가 되어야만 잘산다고들 말한다. 이러다가 우리는 끝내 잘살지 못하리라. 심보르스카가 이렇게 노래하고 있으니.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결코 두 번은 없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