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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경제읽기]서브프라임 한파 러시아도 ‘꽁꽁’

입력 | 2007-10-02 03:02:00


지난달 29일 낮 모스크바 남부 가리발디 거리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 나온 인부들은 작업을 거부하고 짐을 챙기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보름 치 임금을 주지 않는 사업주를 비방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이 공사장의 사업주는 올 5월 모스크바 시에서 재개발 허가를 받고 브레즈네프 시대에 지었던 아파트 세 동을 허문 뒤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9월 중순부터 갑자기 돈줄이 막혀 임금 지급을 중단했다는 것이 인부들의 얘기였다.

인부들이 떠난 텅 빈 공사장에서 건축 자재를 정리하던 세르게이 가이다 씨는 “사업주에게 돈을 대 주던 은행이 금리를 높이면서 신용 대출을 잠시 중단해 이런 일을 겪는 공사장이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귀띔했다.

같은 날 러시아 경제지들은 ‘유럽에서 자금을 빌려 쓰던 소규모 러시아 은행들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신용 경색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예상보다 빠르게 러시아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쳐 전문가들이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방크의 수석 연구원인 나탈리야 오를로바 씨는 “외국에서 일어난 금융 사태가 1998년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엄(대외 채무 지불 유예) 당시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러시아에 도달했다”며 “민간 기업의 대외 부채가 늘어 가던 시점에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러시아 금융 시장은 한때 출렁거렸다. 대출 금리는 올 상반기 14%대에서 16%대 이상으로 치솟았다. 투자 증가율은 올 6월 28%에서 9월 19%로 내려갔다.

올 상반기 대규모 주식을 공개한 러시아대외무역은행의 주가가 급락했으며 일부 기업은 주식 발행에서 차질을 빚었다.

세계 1위 가스수출기업인 가스프롬과 러시아 굴지의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티도 이번 사태가 일어난 뒤 채권 발행을 잠시 중단했다.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두 기업이 지난해 파산한 석유회사인 유코스의 자산을 인수하느라 현금을 대부분 쓴 뒤에 금리가 올라 자금 조달 위기를 겪었다”고 분석했다.

금융 시장의 요동은 식을 줄 모르던 건설경기 등 실물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러시아 재무부는 내년 1월경 서브프라임 사태를 본격 체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을 늘렸던 러시아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