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무기 신고거부 의도는
韓-美 “폐기가 더 중요”… 합의문에 ‘연내신고’ 명시안해
전문가들 “北, 美에 한반도 비핵지대화 회담 제안할 것”
북한이 지난달 30일 잠정합의문을 내고 휴회한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핵무기 신고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6자회담 참가국들도 이를 용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핵 비핵화 협상이 ‘완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불능화 단계에서 핵무기 신고를 거부한 북한은 평북 영변 5개 핵시설에 대한 비핵화 과정이 마무리된 뒤 2단계 회담으로 미국과 핵 군축회담을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왜 핵무기 신고 거부 용인했나=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회담에 임하면서 유달리 불능화와 신고는 핵 폐기로 가는 중간단계 과정에 불과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담 휴회 직후 “하루라도 빨리 핵 폐기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 ‘불능화 잘했다’ ‘신고 잘했다’ 하는 것은 앞으로 폐기 단계에 들어가면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빨리 움직이고 다음 단계로 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완벽한 어프로치를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도 했다.
핵무기의 경우 신고보다는 폐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핵무기를 직접 신고받는 대신 플루토늄의 생산과 사용 내용, 재고량 등을 신고받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핵’의 내용이 상세히 신고된다면 핵무기 보유 수나 핵 기술을 추정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북한의 진짜 의도는=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플루토늄 생산량과 재고량을 밝히고 그에 대한 검증작업까지 허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북한의 의지 표명이 2일 발표될 것으로 기대되는 ‘합의문’에 문서화되지 않는다는 점.
합의문에는 북-미가 서로 믿고 연내 핵시설 불능화와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하겠다는 ‘총론’을 포함하지만 불능화의 방법, 신고 대상과 범위 등 ‘각론’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플루토늄에 대한 언급은 ‘북한이 연내 신고해야 할 대상은 플루토늄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과 요소’ 정도로만 적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도 ‘신고단계에서 해명한다’는 정도로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으로서는 UEP를 시인한다기보다는 관련 의혹을 미국 등이 제기하면 해소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과거 핵’을 성실히 신고할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2·13합의를 영변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에 국한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2·13합의에 의한 불능화 단계를 거친 뒤 핵 폐기 단계에서 ‘새로운 게임’을 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이번 회담에서 낡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로 중유 지원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얻어내겠다는 의도를 보였을 뿐 궁극적인 핵 포기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며 “핵무기 논의 단계에서는 핵 군축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자는 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과는 달리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까지는 멀고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점이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