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 ‘실세총리’로 권력유지 노린듯
체스왕 카스파로프는 야당 대선후보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통령 퇴임 후에도 ‘실세 총리’가 되어 계속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 푸틴 대통령이 12월 총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다고 AP 통신이 1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1일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8차 당대회에 참석해 “통합러시아당 총선 후보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며 “당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12월 2일 실시되는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것.
푸틴 대통령은 또 총선에서 당선된 뒤 차기 정부에서 총리로 국정을 이끌겠다는 의도도 내비쳤다. 그는 총리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3선 연임 금지 조항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내년 3월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되어 왔다.
그동안 차기 대통령이 임기 중 사퇴하고 푸틴 대통령이 다시 출마하는 등의 다양한 집권연장 시나리오가 예상됐다. 이 때문에 그가 이번에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힘으로써 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한 뒤 실세 총리로서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러시아의 체스 영웅 가리 카스파로프(44) 씨가 지난달 30일 러시아 야권세력인 통합민주연대의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전당대회에서 전체 투표수 494표 가운데 379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카스파로프 씨는 1996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 체스 게임을 벌여 이긴 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2005년 체스계에서 은퇴를 선언한 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4년 5월 연합시민전선을 결성하고 야당인 ‘다른러시아’에서 활동하면서 각종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왔다.
지인들은 그에 대해 “체스 선수 시절부터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이 남달랐다”고 말한다. 대담하고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게임 스타일만큼 사고방식도 자유롭고 이상적이었다는 것.
하지만 카스파로프 씨가 내년 3월 대선에 공식 출마할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푸틴 대통령의 현재 지지도가 80%에 육박해 야당의 ‘인권’과 ‘민주’ 구호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점도 부담이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