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수도에는 중심이 되는 도로가 있기 마련이다. 서울의 중심 도로가 세종로라면 독일 베를린에는 ‘운터덴린덴’이 있다. 과거 동서 베를린의 분기점이었던 브란덴부르크문(門)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다. 두 곳은 독일인에게 분단의 상징이었다.
그런 곳에 인파와 맥주가 물결처럼 흘러넘친 날이 있었다.
1990년 10월 3일 0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운터덴린덴 옆 옛 제국의회 건물에는 검정과 빨강, 황금색이 선명한 독일 깃발이 올려졌다.
독일 통일의 순간. 폭죽이 싸늘한 가을 밤 공기를 덥혔다. 맥주와 샴페인을 손에 든 사람들은 서독의 국가를 제창했다.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전했다.
‘동서의 최전선에서 불화를 겪던 국가가 유럽의 중앙 무대에 복귀한 것을 의미한다. 과거 유럽 대륙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던 나라가 이번에는 경제 강국으로 돌아왔다.’
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동독의 1600만 인구가 더해져 통일 국가의 인구는 7800만 명이 됐다. 서독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는 각각 통일 국가의 초대 대통령과 총리가 됐다. 운터덴린덴과 브란덴부르크문도 통일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이웃 국가들은 독일의 통일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치즘의 악령은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었다. 통일의 주역이었던 콜 총리가 이걸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쓴 기고문.
‘모든 사람은 명심해야 합니다. 독일은 결코 독단적으로 하지 않을 겁니다. 일방적인 국가주의도, 무자비한 제국도 없을 것입니다.’
좀더 의미심장한 발언은 동독 총리였던 로타어 데메지에르에게서 나왔다. 그의 마지막 국정 연설은 이랬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도 가벼이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이다.
‘조금 뒤면 동독은 서독에 흡수됩니다. 이는 환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또 눈물 없는 작별이기도 합니다.’
북한 평양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오늘.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를 둘러싼 환상은 무엇이고 눈물도 없이 이별을 고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