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왼쪽)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1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긴급 회동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측의 불법 동원 경선을 막기 위해 경선 일정을 1주일간 중단할 것을 당 지도부에 요구키로 합의했다. 전영한 기자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 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1일 심야 회동을 통해 경선 일정 잠정 중단 요구라는 극약 처방에 합의하기까지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의 독주 체제로 흘러가는 경선 양상에 대해 두 진영 간의 공통된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양측 의원들에 따르면 “정 전 의장 측의 불법 동원 선거가 계속되는 한 경선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이 전 총리 측이 먼저 손 전 지사에게 공동 대응을 제안했고 손 전 지사가 이에 응하면서 회동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대통령 명의 도용 사건=이 전 총리는 승리를 낙관했던 지난달 30일 부산·경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하자 캠프를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했다. 이날 심야회의 때 “조직 선거의 벽이 너무 높아 앞으로도 정동영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 정 후보 측 불·탈법 선거에 대해 좀 더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이 전 총리도 이에 적극 공감했다는 것.
다음 날인 1일 노무현 대통령 명의를 도용한 혐의로 검거된 대학생들이 정 전 의장 측 서울지역 조직책임자인 정인훈(45·여) 종로구의원의 지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전 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정 전 의장 측이 배후일 것이라는 보고에 특히 대로(大怒)했고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려 손 전 지사 측과 연대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명의 도용 사건이 ‘결행’의 명분을 마련해 준 셈이다.
이 전 총리 측 윤호중 전략기획본부장, 김형주 대변인 등이 손 전 지사 측 송영길 전병헌 의원과 곧바로 접촉에 나섰고 이를 통해 각각 전북 전주시와 대전에서 지방 일정을 소화하던 이 전 총리와 손 전 지사는 이날 오후 9시경 통화를 한 뒤 경선 일정 중단의 불가피성에 공감했다.
▽회동 계획 발뺌하다 심야에 기자들 불러=두 주자 간 통화가 이뤄지면서 이날 만남의 시간과 논의 내용은 사실상 정해졌으나 이 전 총리 측은 ‘노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듯 이날 밤 12시가 돼서야 기자들을 ‘긴급 소집’했다. 이 전 총리 측 관계자는 “2일이 되면 두 주자의 주장이 남북 정상회담 이슈에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또 두 주자의 주장이 언론의 분석이나 해석 없이 그대로 전달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부득이 조간신문 마감 직전을 택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회동 사실을 입수한 기자가 오후 10시 50분경 이 전 총리 측 공보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이 담당자는 “어떻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거느냐”며 ‘호통’을 쳤다. 11시 30분경 기자가 여의도 캠프로 가 이 전 총리가 손 전 지사와의 만남에 앞서 참모들과 대책회의 중인 사실을 취재하자 캠프 측은 “사무실에서 나가 달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이 전 총리 측은 11시 56분이 되자 갑자기 출입기자들에게 ‘12시 5분에 여의도에서 회동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메시지 발송 10여 분 전까지는 “오늘 아무래도 두 분의 회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연막을 피웠다. 이 때문에 “이 전 총리는 불편할 땐 언론 취재를 봉쇄하고 필요할 땐 도구처럼 이용하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는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30일 부산·경남 경선에서 2위로 패배한 직후 개표장을 퇴장할 때도 기자들의 질문에 “난 길에서 인터뷰 안 한다니까”라며 ‘경위’와 ‘예의’를 따진 바 있다.
이 전 총리는 또 최근 TV토론에서 “민주개혁세력 결집을 위해서는 손학규 후보가 (당 대선 후보로) 되는 것은 막아야 하며 나 아니면 정동영 후보가 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던 이 전 총리가 손 전 지사의 손을 잡고 정 전 의장에 비수를 겨눈 것도 ‘계산 해찬(계산에만 빠른 이해찬)’이라는 뒷말을 낳고 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