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근대 성경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윌리엄 틴들이 화형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그의 죄목은 ‘이단’,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기독교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서 공인받은 이후 성경은 라틴어로만 쓰여 보급되었다. 당시 널리 통용된 성경은 4세기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이었다. 귀족, 사제, 학자 등 고등 교육을 받은 계층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일반 민중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기득권층은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많은 사회적 폐단을 야기했다. 가톨릭교회가 돈을 내면 죄를 사해 준다고 내건 ‘면죄부’ 판매가 대표적 사례. 이런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일반인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523년 가톨릭 사제였던 틴들이 대중어인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는 큰 저항에 부닥쳤다. 성경이 일반에게 보급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고위 사제들이 조직적인 방해공작을 펼쳤다.
이 같은 방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틴들은 “만약 하느님이 내 생명을 보존해 주신다면 나는 몇 년 안 되어 쟁기질을 하는 소년들이 당신보다 성경을 더 잘 알 수 있게 하겠다”며 독일에 가서 번역을 계속했다.
함부르크와 비텐베르크를 오가며 비밀리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으나 독일에서도 상황은 여의치 못했다. 경찰의 습격으로 인쇄 작업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영국에서는 그를 체포하려고 비밀요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인쇄공의 배신, 도피,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숱한 방해와 난관 가운데서도 그는 결국 1535년 10월 4일 성경 완역 작업을 마쳤다. 비밀리에 출판된 영역 성경은 영국으로 수출되는 술통과 밀가루포대, 혹은 짐짝 등에 숨겨 반입됐다.
틴들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러나 실제로는 주교가 보낸 첩자였던 필립스의 밀고로 체포되었고 1536년 재판도 없이 화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틴들은 비록 헨리 8세에 의해 화형을 당했지만, 그 딸인 엘리자베스 1세 통치 말기에 성경 번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다음 왕인 제임스 1세는 1611년 틴들의 번역 성경을 기초로 현재 영어 성경의 기본이 되는 ‘킹 제임스역 성경’을 발행했다.
틴들이 화형장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는 75년이 지난 후 응답을 받은 것이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