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북 이틀째 이모저모
3일 평양에는 비가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은 이날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경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경기장에 입장해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입장하자 관중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기립 박수로 환영했다.
공연을 관람하던 노 대통령은 8시 44분경 김 상임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자 잠시 뒤 함께 일어나 박수를 쳤다. 출연한 아동들이 공연을 마치면서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석단(귀빈석) 쪽으로 달려 나오자 김 상임위원장이 일어나 박수를 친 것. 아리랑 공연 2장 ‘선군아리랑’의 ‘활짝 웃어라’ 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권양숙 여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아리랑 공연이 끝나는 대목에서 한 번 더 일어났다. 공연이 끝나갈 즈음 관중이 함성을 지르며 노 대통령을 향해 환호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출연자들과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때는 권 여사를 비롯해 남측의 공식수행원, 특별수행원 전원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이때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카드섹션에서는 ‘21세기 태양은 누리를 밝힌다. 아, 김일성 장군’이라는 구호가 나타났다. 노 대통령이 박수를 치는 도중 ‘무궁 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라는 구호로 바뀌었다. 출연자들과 관중은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노 대통령은 공연이 끝난 후 공연 관람 도중 박수로 격려한 데 대해 “손님으로서 당연한 예의”라고 말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민문화궁전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북측 인사 130명과 남측 공식수행원, 특별수행원이 참석한 가운데 답례만찬을 주재했다. 이날 만찬은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 공연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오후 10시 10분경 시작돼 밤 12시를 넘겨 계속됐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만찬장에 나오지 않았는데 청와대 관계자는 “4일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 서명할 합의문 작성 때문에 불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답례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어제오늘 저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며 “특별히 우리 일행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 위원장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0세기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와 냉전의 질서 속에서 큰 시련을 겪어야 했으나 이제는 다르다”며 “남과 북이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번영하는 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오전 김 위원장과 1차 정상회담을 한 뒤 남측 방북대표단과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옥류관은 47년 전통의 북한 대표 음식점으로 평양냉면이 간판 메뉴다.
이날 오전에 열린 첫 번째 단독 정상회담 직후 옥류관에 도착한 노 대통령의 표정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노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숨김없이 진솔하게 얘기를 나눴다”며 “분명하게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20분에 걸친 오찬 인사말에서 평화 합의와 공동의 경제 번영을 위해 북한 체제를 존중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를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다만 “한 가지 쉽지 않은 벽을 느끼기도 했다”며 “남측이 신뢰를 가지고 있더라도 북측은 아직도 남측에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불신의 벽을 좀 더 허물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예를 들면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어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때보다 예우를 덜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환영식에 참석한 인사 수까지 거론하며 적극 진화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몇 가지 포인트에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2일 열린 공식 환영식 행사에서 노 대통령이 전용차량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한 손 악수에 그치는 등 2000년 정상회담 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 노 대통령에 대한 예우 논란이 일었다.
평양=공동취재단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