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읽은 책을 그냥 놓고 와야 하는 심정은 내 혼을 거기다 반 넘게 남겨 놓고 오는 것과 같았다. 숙부네 다락방에서 만화책을 빼앗겼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그것과는 댈 것도 아니게 허전했다. 미칠 것 같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는 ‘자화상을 그리듯이 쓴 글’이라고 밝힌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 경성부립도서관(현 서울특별시립남산도서관)을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아동용으로 펴낸 ‘아아, 무정’을 읽다가 폐관 시간에 쫓겨 덮고 나오던 애틋한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소녀에게 도서관은 소공녀 세라와 장발장을 만나는 꿈의 세계였고,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꿔 본 별천지’였다.
서울 최초의 공립 공공도서관인 경성부립도서관은 1922년 10월 5일 문을 열었다. 서울 명동의 옛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지은 2층짜리 도서관이었다. 성인 열람실은 60석이 고작이었다. 장서는 1923년 7922권에서 1932년 3만414권으로 늘었지만 일제가 ‘식민지 교화’를 위해 고른 ‘온건한’ 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식에 목말라하던 민초들에게는 단비였다. 서울시가 펴낸 서울600년사는 1926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해 그해 11월 경성부립도서관의 이용자는 1만2840명이었다고 적었다.
1927년 현재의 중구 소공동으로 옮긴 뒤 광복 이후에는 남대문도서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5년 현대식 도서관 전용 건물을 마련해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전했다. 남산도서관이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현대식 건물을 장만했지만 대가는 컸다. 서울 도심을 내 주고 남산 자락으로 밀려난 것이다. 시민과의 간극도 벌어졌다. 현재 남산도서관이 소장한 도서는 42만 여권. 하루 평균 도서 열람자는 1000명 정도다.
등화가친(燈火可親)과 신량(新凉)의 계절이라는 가을, 가족과 함께 도서관 나들이는 어떨까. 도서관 창밖으로 흐르는 가을 풍광은 덤이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 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