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센터 취재열기 4일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건배하는 장면. 평양에서 송출된 이 화면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프레스센터 스크린에서 수신한 것이다. 연합뉴스
4일 발표된 10·4공동선언은 주요국 외신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대다수 언론은 공동선언 합의 사실을 즉각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특히 종전 선언 논의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 가능성과 양측의 경제협력 확대 방안에 관심이 쏠렸다.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비롯한 여러 걸림돌로 인해 합의 내용이 얼마나 가시화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미 언론 신중한 평가=미국 언론들은 선언 내용과 전날 6자회담 공동합의문을 연결해 앞으로 한반도의 기류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종전 선언 논의를 위한 4자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승인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합의는 새로운 국면을 펼치기보다는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많은 한국인과 야당이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워싱턴과 한국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합의 도출에 대한 안도감과 (북한의 실천 의지에 대한) 불신이 교차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합의 내용의 시한과 조건 등이 모호해 양측이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추진할 여지를 남겼다”고 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불신의 벽, 남북회담에 그림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의혹을 갖고 있다”며 남북 정상이 여러 분야의 협력을 증진하고자 했으나 회담은 조화로움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예상보다 진전된 내용”이라는 평가에 “남한이 너무 많이 줬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는 한국 전문가의 반응을 덧붙였다.
▽기대감 보인 중, 러=중국 언론은 4일 공동선언이 나오자마자 이를 신속하게 보도하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오후 공동선언문이 나오자 합의된 8개항을 속보로 내보낸 뒤 1면 머리기사로 종합해 보도했다. 국영 중앙방송인 CCTV 뉴스채널도 낮 12시(현지 시간) 뉴스 머리기사부터 ‘10·4선언’이 곧 발표될 것이라고 알렸다.
러시아 언론은 남북의 경제협력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 짤막하게 공동선언 소식을 전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남한이 남북 접경지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철도 교통을 재개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일본의 냉정한 평가=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중앙 일간지가 석간에서 공동선언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며 일본인 납치 문제가 논의됐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 언론들은 “7년 전 정상회담에서 하지 못했던 군사 분야에서의 합의가 처음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임기가 5개월 남은 정권의 합의 이행 능력에 대해서는 일부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은 남북이 이번 선언을 통해 대규모 경제협력을 진전시켜 한반도의 비핵화 및 긴장 완화를 이루려 한다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 해결이 불가피하고 미국, 중국과도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도통신은 “노 대통령은 회담 성공을 계기로 대북 화해정책을 지지해 온 여당 세력을 지원할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유럽 언론 ‘한계’ 지적=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5일 “남북 간의 평화 선언은 국제관계에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상징적인 것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평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북한은 파산 지경이고 한국 노 대통령은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며 “노 대통령은 북한을 포함하는 지역 공동시장 창설을 꿈꾸지만 이는 앞으로 매우 머나먼 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정치권“미흡한 회담” “경협 성과 환영”▼
4일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대해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는 일부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미흡한 점을 지적했다. 반면 범여권 대선주자들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진전을 이뤘다”고 일제히 환영했다.
이 후보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두 정상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핵 폐기, 이산가족,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등이 다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범여권 주자들은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논평을 내고 “통일부 장관 시절 허허벌판이었던 개성지역에 공단을 만든 추진력이 이제 해주공단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결실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성명서에서 “이번 공동선언에 내가 제안한 주요 내용과 취지가 모두 들어 있어 개인적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면서 “나는 정치 입문 이후 일관되게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 직후 북한 미국 중국 등을 방문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사실을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평화체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인제 의원 측 이기훈 대변인은 “경제협력, 군축분야의 성과를 평가하고 크게 환영한다”면서 “다만 납북자, 국군포로 등 인권 현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조순형 의원 측은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의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핵 폐기 조치 등이 없는 미흡한 회담”이라고 비판했다. 강재섭 대표는 남북 정상선언 발표 직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상당수 남북 경협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언급됐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촬영: 동아일보 사진부 김동주 기자
박형준 대변인은 “핵 폐기를 위한 실질적 조치나 확실한 의지 표명이 남북 정상 간에 없었던 것은 매우 아쉽다. 핵 폐기 없는 성급한 종전 선언 추진은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