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384쪽·1만4000원·부키
세계화를 강력히 옹호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고급 자동차 렉서스는 세계화의 성공 사례를 상징한다.
프리드먼은 이런 렉서스를 생산하려면 국영 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 조직의 규모 감축, 재정 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렉서스를 생산하는 도요타자동차의 실제 역사를 뒤져 보면 이와 상반된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도요타가 1958년 미국에 처음 수출한 도요펫이 철저히 실패했을 때 일본의 경쟁우위 산업은 자동차가 아닌 실크였다. 자유무역이론에 따르면 일본은 자동차산업을 포기하고 경쟁 우위에 있는 실크산업에 더 투자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수입 자동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자동차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규제하고, 심지어 도요타가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만일 프리드먼이 말한 것과 정반대되는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렉서스는 존재할 수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등을 통해 이러한 서구 경제이론의 모순을 비판해 온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대중적 글쓰기로 풀어낸 경제교양서다. 이 책의 제목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뒤집은 것으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하는 무정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을 꼬집은 것이다.
장 교수는 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들어 ‘비교우위이론’ ‘지적 재산권 보호론’ ‘공기업 민영화론’ ‘작은 정부론’ ‘투명 경제론’ 등 경제학의 정설로 대접받는 이론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음을 조목조목 공격한다. 심지어 이들 이론이 영국 미국 독일 일본의 역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맹비판하며 경제학에서도 ‘차가운 머리’만큼 ‘따뜻한 가슴’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영어로 집필돼 올해 7월 랜덤하우스를 통해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뒤 좋은 반응을 얻었고 12월 미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