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논술에 딴지걸다/문우일 지음/208쪽·9500원·명진출판
올여름 한국 영화 화제작 중 하나였던 ‘디 워’. 논란도 많았지만 전설의 이무기만은 생각보다 사실적이었다는 칭찬이 컸다. 그러나 관객은 안다. 그 이무기가 실재는 아니라는 걸.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합성임을 안다.
하지만 용과 이무기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보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았다. 관습으로 믿음이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전통이나 관습을 절대적으로 믿고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 바로 ‘극장의 우상’이다. 이처럼 편견과 잘못된 선입견에서 생기는 오류를 영국 철학자 베이컨은 4가지 우상으로 정리했다.”
철학은 어렵다? 맞는 말이다. 깊이 있는 철학책은 둘째 치고 도덕 교과서도 난해하다. 딱딱한 이론 위주로 외우기도 벅찼다. 하지만 철학은 중요하다. 거창하게 삶까지 논하진 말자. 철학에 내재된 논리적 사고와 표현. 눈앞에 둔 논술시험에 보탬이 된다.
저자는 자신한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접근법을 쓰면 철학과 논술은 영화보다 흥미롭다.” 당장 논술에 철학을 써먹을 수 있다. 그 묘미를 즐겨 보라고 저자는 유혹한다.
유혹은 꽤나 성공적이다. 술술 읽히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건 가로막는다. 하나의 단락마다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문제를 실었다. 상관없는 듯한 문학작품도 실어 또 한번 논술 연습을 해 보길 권한다. 세련된 복습법이다.
줄쳐 가며 외우던 걸 쉽게 설명하니 기억하기도 좋다. 세상이 물로 이뤄졌다던 고대철학자 탈레스. 솔직히 ‘철학자 맞아’ 한심해하며 그냥 암기했다. 하지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려 보자. 원시적인 것에서 고등생물로 진화. 물에서 아메바가 생기고 물고기로, 인간으로. 생각해 보니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데모크리토스의 ‘만물 원자설’로 이런 논리가 바탕이 됐다.
책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단락만 보면 서양 철학사(史) 같지만 알고 보면 “생각게임”(손동현 성균관대 학부대학장)이다.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 사이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 사고력은 논술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모든 과목에서 든든한 자양분을 얻는다.
치우치지 않는 안배도 적당한 편. 종교에 치우친 중세철학이나 위험한 생각으로 폄훼되던 마르크스 사상도 다룬다. 틀린 건 틀린 거고 배울 건 배운다. 유명 논술강사답게 그걸 영화나 소설, 심지어 만화 등과 연계하는 유려함도 돋보인다.
아쉬움도 있다. “너 자신을 알라”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인데 그대로 쓰는 등 개선할 점도 보인다. 하지만 크게 봐서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말했듯 이 책은 정보 제공이 핵심이 아니다. 읽으며 생각하고 생각하며 읽는 힘을 기르는 게 목적이다. 저자는 그 룰을 따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