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벨상을 받는다고요? 그럴 리가요.”
2002년 10월 9일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씨는 갑작스러운 국제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다. 그 스스로도 잘못 걸려 온 전화라 생각했고 가족들은 TV를 보며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여겼다. 수상 내용을 해설하기 위해 일본 종합과학기술회의에 모인 유명 과학자 3명은 아예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날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일본 교토의 실험기기 제작회사인 시마즈(島津)제작소 주임연구원 다나카 씨를 101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학사 출신으로는 처음 이 상을 탄 그는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섰다.
수상 이유는 15년 전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질량분석기법을 개발한 것. 이 기법을 통해 암과 같은 질병의 조기 발견과 신약 개발이 가능해졌다.
다나카 씨는 1983년 도호쿠대 전기공학과를 유급 끝에 가까스로 졸업했다. 여러 대기업의 입사시험에 떨어진 뒤 ‘대학보다 더 학구적인’ 시마즈제작소에 들어갔다.
전공이 달라 화학지식이 부족했던 그는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에 몰두했고 연구에 방해가 된다며 머리를 빡빡 깎기도 했다. 그가 맡은 연구는 레이저를 이용해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 하지만 분자량과 질량을 파악하기 위해 단백질 시료에 레이저를 쏘면 강한 빛과 열에 시료가 타 버리거나 부서지기 일쑤였다.
시료를 보호할 수 있는 용액을 개발하기 위해 200여 가지 시약의 농도를 다르게 하며 몇 년간 실험을 거듭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그에게 아르키메데스처럼 ‘세렌디피티(serendipity·행운의 발견)’가 찾아 왔다. 실수로 글리세린 용액을 코발트 미세 분말에 떨어뜨린 뒤 비싼 코발트가 아까워 시약으로 썼고 결국 이 시도가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내는 계기가 됐다.
‘샐러리맨의 신화’가 된 다나카 씨는 회사가 제의한 이사직을 거절하고 연구원으로 남기를 원했다.
2004년에야 시마즈제작소의 임원이 된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에서 실험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또 세계 각지의 강연회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사실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